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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Jan 20. 2023

우리는 영어 번역기의 노예가 되려 하는가?

며칠 전 영어 조기교육의 필요성에 관한 강연에 참석했다. 강연자는 영어 영어교육 및 영어 유치원이 실제로 아동의 영어 학습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복잡한 통계 분석으로 증명해 주었다. 명쾌한 강의가 끝나자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학부모로 보이는 한 남성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그 질문자의 강연을 요약하면,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 같은 알고리즘이 너무 잘 되어 있는 지금의 IT 시대에 영어 교육이 정말 필요할까요?”였다. 영어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는 답하기에 어렵고 난감한 질문이었다. 강연자는 이제는 영어 교육이 부모 선택의 문제라고 답을 했다. 그 강연자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시대에 기계 번역기가 시간이 갈수록 완벽해지는 이런 시기에 영어 학습도 이제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파파고 번역기

하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파파고 등의 기계 번역기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영어 학습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런 비유를 들고 싶다. 지금 많은 가정에서는 로봇청소기를 활용하여 집을 청소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로봇청소기를 사용할까? 로봇청소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우리 인간이 직접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했었다. 그냥 우리가 하면 되는 데 왜 그 청소를 로봇에게 맡길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귀찮은 집 청소를 우리 인간이 더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청소하는 시간에 독서를 하면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헬스장을 다니면서 자기 건강을 관리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로봇이 해 놓은 청소를 보면 한계가 있다. 바닥의 먼지 등을 청소하는 매우 간단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추가로 청소를 해서 자신이 원하는 깨끗한 환경을 만든다. 물론 로봇청소기의 그런 간단한 청소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구매해 활용하는 것이다. 고가일수록 로봇청소기의 성능이 향상되어 좀 더 정교한 청소를 하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런 로봇청소기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 

로봇청소기

청소 전문성을 놓고 보면 로봇청소기보다 우리 인간이 더 뛰어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로봇청소기가 방해물을 피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우리 갓난아기보다 못하다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 갓난아기는 근육운동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가고자 하는 곳에 의자 등 방해물이 있으면 그런 방해물과 부딪히지 않고 적절히 피해 가면서 기어간다. 하지만 로봇청소기는 어떤가? 방해물이 있으면 일단 그 방해물과 부딪친 후에 다른 길로 우회한다. 물론 성능이 더 뛰어난 로봇청소기는 정교한 센스가 장착되어 있어서 그런 방해물과 부딪치지 않고 바로 우회할 수는 있다. 이처럼 고성능의 로봇청소기는 기껏해야 기어 다니는 인간의 갓난아기 수준이다. 


현재의 영어 번역기가 초보적인 로봇청소기의 수준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 번역기는 평범한 사람 그 이상의 수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그 수준은 영어 전문가의 능력을 뛰어넘을 것이다. 문제는 그때부터이다. 내가 원하는 영어 자료를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가 번역해 결과물을 내준다. 난 그 결과물을 읽고 내 머릿속에 내가 원하는 개념을 정립한다. 그런데 이런 번역기가 오류를 범하는 일도 있다. 잘 알다시피 언어는 민감하고 섬세하다. 언어에는 비유와 정서를 표현하는 문장들이 즐비하다. 비유는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고, 정서는 인간에게 고유한 느낌의 표현이다. 인간성이 묻어 있는 이런 표현은 번역기가 제대로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이런 오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이 번역기의 결과물을 원본과 대조하면서 고쳐 나가면 된다. 그렇다, 인간이 영어 학습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로봇청소기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 구역을 인간이 직접 마무리해야 하듯이, 번역기의 오류를 인간이 직접 바로 잡아야 한다. 인간이 로봇청소기보다 청소를 더 잘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이런 오류 수정 작업이 가능하듯이, 인간이 번역기보다 더 뛰어난 영어 능력을 갖추어야 번역기의 오류가 눈에 들어오고 그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영어 능력이 없다면 번역기가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오류를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개념 정립에 오류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의도치 않은 번역기의 오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번역기가 자기도 모르고 저지른 실수이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번역기의 ‘의도적 오류’이다. 현재의 IT 수준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번역기는 인간을 속이려고 고의적으로 잘못된 번역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인간이 그런 번역기의 결과물을 인간의 인지적 공간에 넣고 그것을 올바른 것으로 믿고 일을 진행한다면, 그런 일의 진행은 인간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번역기라는 알고리즘이 의도한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알고리즘이 인간을 노예 상태로 만드는 시점이다. 영어 학습에 더욱더 진심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번역기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함인 것이다. 


우리가 인공지능과 협력해야 하는 시기는 무조건 도래한다. 아니, 이미 도래했다. 하지만 그런 협력이라는 것이 진정한 협력이 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은 인공지능대로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인간은 인간대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한쪽이 무능하면서 능력을 갖춘 다른 것과 협력한다는 것은 협력이 아니라 ‘종속’이다. 우리가 로봇청소기의 기능을 더욱 발전시켜 인간이 청소라는 허드렛일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냥 그런 일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어진 시간을 자기 계발에 활용하여 우리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번역기의 경우는 다르다. 그냥 번역기에 번역의 일을 맡기고 인간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번역기의 비의도적 오류와 의도적 오류에 종속되는 노예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 영어 학습에 더욱 집중해야 하고, 더 나아가 번역을 번역기에 맡겨 많은 개인 시간이 확보되면 그 확보된 시간은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고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 일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다른 무언가를 계속해서 우리 인간은 찾고 그곳에 남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인공지능에 종속당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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