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영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영어 자체가 아니라 영어로 쓰인 글, 즉 영어 원서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영어 자체를 알아야 원서를 읽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난 영어 글을 읽으면서 영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어로 된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실수로’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이 내 논리였다. 영어 원서가 없는 경우라면, 영어학습과 우리말로 쓰인 책과 신문 등의 글 읽기 중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면, 난 당연히 글 읽기가 중요하다고 답변한다. 영어라는 언어는 글을 읽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영어든 우리말이든 글 읽기를 잘한다는 것은, 글 읽기 자체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읽은 후에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글로 적다 보면 그와 관련된 또 다른 참신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샘솟을 것이다. 그러면 그 생각을 처음에 적은 글에 추가해서 그 글을 보충하면 된다. 더 나아가 같은 글을 읽은 친구나 동료가 있다면, 거창한 토론은 아니더라도 그 친구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대화든 잡담이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처음의 내 생각은 상대의 생각으로 강화되어 또 다른 독특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 적은 글을 다시 보강하면 된다. 이처럼 좋은 글이란 읽기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내가 글 읽기를 권하는 것은 결국 글 쓰기를 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글을 쓴다고 할 때 쓸 내용이 필요한데, 그 내용을 글 읽기에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책 읽을 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글을 쓰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난 일기를 쓰라고 권한다. 일기의 경우에 쓰기 위한 정보나 내용은 책이 아닌 자신의 하루하루 삶에서 얻을 수 있다. 하루의 삶의 내용이나 그 내용에 대한 자기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이 일기이다.
일기 쓰기의 개념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에, 사람들은 종종 자기 생각이나 경험, 사건을 돌, 파피루스, 또는 양피지와 같은 다양한 매체에 기록하곤 했다. 이러한 초기 형태의 일기는 종교적·역사적·개인적 문서를 포함하여 다양한 목적을 수행했다.
개인적 문서로서의 일기로 보는 현대적 개념은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에 등장했다. 이 시기 동안, 종이 생산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개인 기록을 보관하는 것이 쉬워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진중에서 적은 난중일기로, 1592년 임진년에서부터 1598년 무술년 사이인 7년 동안의 전쟁 중 기록이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에 의해서 보존되어 오다, 1962년에야 세상에 알려졌고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기록 유산으로 인정되어, 같은 해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펼쳐진 전쟁 과정을 상세히 적고 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연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군 운영과 군사 대책, 작전 상황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군사 연구에도 결정적인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 중 하나는 17세기 영국의 저작가이자 행정가인 새뮤얼 피프스(Samuel Pepys; 1633~1703)의 일기이다. 1660년에서 1669년 사이에 쓰인 피프스의 일기는 영국 왕정복고와 런던 대역병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동안 런던에서 그의 일상을 상세히 담고 있다. 피프스의 일기는 개인적인 기록일 뿐만 아니라 귀중한 역사적 문서이기도 하다.
19세기와 20세기에 일기 쓰기는 더 많은 범위의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작가, 예술가, 정치가, 과학자와 같은 저명한 사람들은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종종 일기를 영감과 자기 표현의 원천으로 사용했다. 몇몇 주목할 만한 예로는 1930~40년대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 동안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Anne Frank; 1929~1945)의 일기와 영향력 있는 현대주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일기가 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손으로 쓴 일기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디지털 일기, 블로그를 보관하거나 심지어 전자 기기에 특화된 일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일기 쓰기의 목적과 스타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해 왔으며, 사회와 개인의 선호도 변화를 반영한다. 오늘날, 일기 쓰기는 정서적 해방의 한 형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일기는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는 배출구를 제공하여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여준다. 일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순간과 사건을 포착하는 개인적인 역사 기록의 역할을 한다. 정기적으로 일기를 쓰는 것은 우리의 창의력과 글쓰기 기술을 향상할 수 있다. 게다가, 일기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통찰력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 준다. 도전이나 어려운 결정에 직면했을 때 일기는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로 작용하여, 우리는 생각을 종이에 적고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얻고 잠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 모든 일기의 장점은 우리의 주관성을 객관화할 수 있는 일기의 기능에서 비롯된다. 자동차 운전의 경우에 사각지대가 있다. 상대편 차가 내 차에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그 차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차선을 바꾸다 보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자동차의 사각지대를 잘 볼 수 있도록 사이드미러 위에 동그란 보조 거울을 붙이기도 한다. 이 보조 거울을 통해 양옆을 살피면서 운전하게 되면 사고 없는 안전 운전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 이 동그란 보조 거울은 우리 인간의 삶에서는 ‘일기’라고 할 수 있다. 내 주변의 가까운 지역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내 생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자동차 사고가 나듯이 우린 곤경과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내 생각과 내 주변은 나의 주관적 현상이다. 주관적 현상은 눈에 보이지 않고 관찰의 대상도 아니다. 관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내 속에 있고 나와 너무 가까운 곳인 사각지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삶의 사각지대를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일기이다. 나의 주관성을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이고 객관성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공적이고 객관적으로 해서, 내가 아닌 타인에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이 공적으로 된다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공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관적인 내 생각은 가시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여 내가 볼 수 있는 사물로 모습을 변경한다. 이제 난 그런 내 생각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좋은 것은 장려하고 잘못된 것은 비판하면서 수정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주관성이 나의 객관성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일기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질적인 사물이나 내용, 사건, 뜻밖인 우연한 일들로 즐비하다. 이러한 세상의 것들은 스토리(이야기, 내러티브)를 이루지 않는다. 그냥 그 자체로 별개의 것으로 존재할 뿐이다. 일기는 우리 삶 속의 이러한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하는 실이고, 이어 붙이는 풀이다. 실로 연결되고 풀로 붙여진 이것들은 이제는 연관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세상을 읽고 다시 고쳐 읽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일기로 적게 되면 이 세상은 새로운 스토리라는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 스토리가 되지 않으면 기억에 오래 남지 않고 곧 사라지게 된다. 스토리가 되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스토리가 되지 않으면 수능 국어나 수능 영어의 지문은 문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식당에서 차려내는 다양한 음식들도 손님인 우리가 보기에는 스토리가 없어 보이지만, 식당 사장님이 그 음식을 만들어서 손님의 식탁 위에 올려놓은 순서나 배치는 그 사장님에게는 스토리이다. 그 사장님에게는 임의로 만들고 임의로 배열한 음식은 스토리가 아니고 음식이 아니다. 그런 음식은 손님에게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다. 단순한 식당 손님이 아니라 식당의 팬들에게 스토리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그 음식을 적절히 배열하는 식당 사장님은 자신만의 ‘음식 일기’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러 이질적인 사물이나 사건이 스토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속에 ‘논리’가 있어야 한다. 논리라는 것은 엄격하고 딱딱한 수학적 논리와 과학적 논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세상에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되게 만드는 ‘공감적 논리’도 있다. 일기를 쓰면서 얻게 된 스토리 만들기 능력, 스토리를 만들면서 얻게 된 논리, 일기를 통해 얻게 된 나에 대한 새롭고 증가된 지식과 인식은 나에게 이 삶을 살아가고 이 세상과 대처하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이제 난 더 강력한 무기로 세상을 읽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일기를 쓰는 것의 중요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일기가 자기 일상에서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기를 쓸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자기반성, 감정적인 행복, 개인적인 성장 혹은 기억을 보존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일기를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연습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린 이 험한 세상의 사각지대에서 안전한 삶을 살고, 나를 비롯한 주변 및 나와 더 멀리 떨어진 사람들로 구성된 이 세상을 읽어 내는 강력한 무기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이 강력한 무기로 나만의 역사를 만들고, 나를 더 강건한 존재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