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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Aug 09. 2023

감정적 강의를 위한 강의자의 희생

최근에 우리 학교에서 교수 임용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 분의 교수가 새로 임용되었다. 요즘은 신임 교수들과 학교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고, 식사 후에는 교내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대화도 나눈다. 대화 주제는 학교 전반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개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진지한 이야기도 있고 가벼운 농담도 서로 주고받는다. 세 분 교수 중에 전자공학 교수는 차분하고 조용히 논리적으로 말씀을 잘하신다.


교수 임용 절차에 시범 강의가 있었다. 이 시범 강의에 간사로 참여한 일문과 교수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교수는 우리랑 같이 식사하는 교수가 아니라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 교수였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새로 임용된 전자공학 교수 이야기가 나왔다. 간사 임무를 맡았던 그 일문과 교수도 전자공학 교수가 이번 시범 강의에서 특히 강의를 잘하시어 평가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했다. 강의 패턴이 묵직하고 논리적이고 차분해 평가위원 모두 강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최종으로 그 교수가 이번에 임용이 된 것이었다.


이번에 계약이 만료되어 재임용 절차에 들어가는 교수님이 내 연구실에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오셨다. 다음 주에 시범 강의가 잡혀 지금 준비 중이라고 했다. PPT는 다 만들었고 조금씩 혼자서 강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분하게 강의를 잘한 것으로 소문난 그 전자공학 교수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도 그 교수처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좋은 강의나 강연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 보았다. 다양한 강의 방식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줄여질 것이다. ‘논리적 강의’와 ‘열정적 강의’가 그 두 가지 방식이다. 추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떤 강의 스타일인지 바로 이해되겠지만, 이 두 가지 강의 방식에 대해 조금 더 덧붙여 말해 보고자 한다. 


논리적 강의는 전달하려는 정보나 주장을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명확하고 합리적인 구조를 따르는 강의를 말한다. 논리적 추론, 증거에 입각한 설명, 잘 조직된 생각의 흐름을 고수하는 것이 논리적 강의의 특징이다. 강의를 논리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명확한 구조이다. 논리적 강의가 되려면 듣는 사람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명확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런 구조는 서론, 핵심 주장, 그 주장을 뒷받침하나 증거, 결론으로 구성된다. 둘째는 순차적 흐름이다. 강의에서 제시된 아이디어는 논리적 순서로 진행되어야 하며, 각각의 요점은 이전 요점에 기초하게 하여 학생이 강의자의 생각이 진행되는 흐름을 잘 따르도록 해야 한다. 셋째는 논리적 추론이다. 강의는 등장하는 여러 개념을 연결하고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타당한 추론과 타당한 논리에 의존해야 한다. 넷째는 증거와 예시이다.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나 예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강의의 논리적 토대를 강화한다. 다섯째는 명확성과 정확성이다. 강의 시 사용하는 언어는 명확하고, 간결하며, 정확해야 한다. 언어의 애매함과 모호함은 듣는 사람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명확하고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여섯째는 오류 피하기이다. 논리적 오류는 논증을 약화시킬 수 있는 추론의 오류이다. 일곱째는 매끄러운 전환이다. 다른 지점과 구간 사이의 원활한 전환은 학생이 강의자의 사고 과정을 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전환에 대한 명확한 신호 전달은 강의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도록 보장한다.


열정적 강의는 열정, 감정, 그리고 깊은 확신으로 정보나 내용을 전달하는 강의를 말한다. 이런 강의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듣는 사람을 감정적 수준으로 끌어들이며, 그들이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수준에서 강의 주제와 연결되도록 영감을 준다. 강의를 열정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감정적 몰입이다. 열정적 강의는 강의자와 학생 모두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강의자가 강의 주제에 진심이면, 학생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고, 강의자와 학생 간에 감정적 연결이 형성된다. 둘째는 진정성이다. 열정은 진정성이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열정적인 강의자는 주제를 진정으로 믿고 관심을 가지는데, 학생도 강의자의 이러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셋째는 에너지와 열정이다. 강의 주제에 대한 강의자의 에너지와 흥분, 열정은 전염성이 있다. 열정적인 강의자의 몸짓, 목소리 톤, 그리고 얼굴 표정은 강의 주제에 대한 열정을 반영한다. 넷째는 개인적 연결이다. 열정적 강의는 종종 주제에 대한 강의자의 깊은 연결을 보여주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이야기를 포함한다. 이러한 개인적 감촉을 통해 듣는 사람은 인간적 수준에서 강의 내용에 다가갈 수 있다. 다섯째는 영감이다. 열정적 강의는 학생이 그 주제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갖도록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한다. 여섯째는 스토리텔링이다. 강의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합하는 것은 강의의 열정적인 전달을 강화할 수 있다. 일곱째는 역동적 전달이다. 열정적 강의는 속도, 강조, 억양을 다양하게 하는 역동적인 전달 방식을 채택하는데, 이는 듣는 사람에게 강의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덟째는 강의의 목적을 표현하는 것이다. 강의자는 주제가 무엇인지뿐만 아니라 그 주제가 왜 중요한지도 전달해야 한다. 아홉째는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열정적 강의는 종종 긍정적이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강의자와 학생 사이에 동지애를 촉진한다. 열 번째는 감정에 대한 개방성이다. 열정적인 강의자는 흥분이든 호기심이든 경외심이든 심지어 취약성이든 간에 진정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에 개방적이다. 열한 번째는 학생의 참여 유도이다. 열정적인 강의자는 학생과 상호작용하면서, 학생을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유도한다. 


우리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서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런 점에서 강의를 듣는 사람은 희생자이다. 자기 말은 못 하고 재미없는 남의 말을 들어야 하니 말이다. 정신과 의사도 어떻게 보면 참 힘든 직업이다. 환자에게 충고하는 것보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더욱이 그 환자의 이야기는 자신의 증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 특이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환자를 진단해야 하므로 청취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될 것이다. 결국 정신과 의사는 환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다.


정말 훌륭한 강의자는 희생하고 있는 학생을 위해 강의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강의자가 학생에게 발표시키면서 학생 자신을 표현하게 만들고, 자신은 말없이 학생의 말을 듣기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주관적 생각으로, 강의 자체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필요가 없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강의란 ‘감정적 강의’이다. 앞선 두 가지 강의 방법 중에서 ‘열정적 강의’에 속한다. 열정적 강의가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요소가 10개가 넘는다. 한 시간 강의에 이 10가지 요소를 모두 잘 버무려 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이는 강의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난 간단히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강의를 권한다. 


강의에 자신의 감정을 용감하게 묻히는 강의자는 많은 청중에게 자신을 그대로 노출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해서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를 때가 많고, 상대도 내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단정하지 못한다. 나도 잘 모르는 내 감정을 많은 사람 앞에서 표출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자신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일종의 희생이기도 하다. 훌륭한 강의자는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나의 앞선 말은 바로 강의 중에 표출되는 감정을 숨기지 말고 강의에 담에 학생에게 그대로 강의 내용과 함께 전달하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 감정적 강의에는 질서와 논리가 없고 야생적일 것인데, 그것이 학생이 그 강의를 이해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되기나 할까라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의에서 논리성과 질서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강의란 강의자 혼자서는 강의가 아니다. 강의란 강의자와 학생 모두 존재해야 강의가 된다. 즉, 강의자와 학생은 강의 자체의 두 가지 중요한 성분이다. 이 두 가지 성분 중에서 강의자가 감정을 표출한다면, 감정이 묻어 있는 강의에서 논리성을 찾아내고 그런 논리성이 없다면 그 논리성을 직접 구축해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학생이다. 


강의자는 감정을 동원하지만, 학생은 강의를 들을 때 이성을 동원한다. 즉, 강의자의 감정적 흥분이 학생의 논리 구축을 유도한다. 내가 원하는 학생과 강의자 사이의 강의는 바로 이런 것이다. 감정의 결과로 이성이 학생들에게 창발 되는 그런 강의! 강의자가 이성을 동원해 논리적인 강의를 하면, 학생도 이성을 동원해 머릿속에 기억을 쉽게 할 것이다. 이성적 강의에 흥분을 느끼는 학생은 드물다. 이성적이고 논리적 강의에는 감정의 흥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감정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다. 이 중요한 감정이 강의에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감정과 이성이 결국은 만나는 강의를 위해 강연자가 자신을 희생해 먼저 자신의 감정을 용기 있게 표출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강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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