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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Oct 08. 2023

<슬픔이여안녕>

좌절과 헤어질 준비가 된 젊음

앨범: 잔나비 소곡집 Ⅱ: 초록을거머쥔우리는

발매: 2022.05.10.

작곡: 최정훈

작사: 최정훈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jGNu9qlLGY


이젠 다 잊어 버린 걸

아니 다 잃어 버렸나

답을 쫓아 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거야

돌아서던 길목이었어     

집에 돌아가 누우면

나는 어떤 표정 지을까

슬픔은 손 흔들며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저 어디쯤에 서 있을 텐데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 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나는 나를 미워하고

그런 내가 또 좋아지고

자꾸만 아른대는

행복이란 단어들에

몸서리친 적도 있어요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 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저 봐 손을 흔들잖아

슬픔이여 안녕 우우”


바람 불었고 눈 비 날렸고

한 계절 꽃도 피웠고 안녕 안녕

구름 하얗고 하늘 파랗고

한 시절 나는 자랐고 안녕 안녕     

출처: https://pixabay.com/photos/japan-vs-grove-2264300/


좌절과 헤어질 준비가 된 젊음


인생 은유


인생은 참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개념이다. 우리 인생이지만 우리에게조차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우린 그 미지의 인생 앞에 어처구니없이 작은 존재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인생을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양한 은유를 사용한다. 은유는 우리 삶의 복잡성, 상징, 다양한 의미들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은유는 ‘인생은 여정’ 은유이다. 이 은유는 인생이 다양한 우여곡절과 우회로가 있는 그러나 결국 목적지가 있는 여행과 같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은유는 여정에서 얻는 경험과 개인적 성장에 중점을 둔다. 또 다른 은유는 ‘인생은 수수께끼’ 은유이다. 이 은유는 우리의 경험, 선택, 도전이 퍼즐 조각과 같으며, 퍼즐 조각을 맞춰야 결국에는 인생이라는 완전한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은유도 있다. 이 은유는 인생을 살아갈 때 인내와 끈기,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할 것을 강조한다. 내가 얼핏 생각한 인생 은유가 이 정도이지만 문화마다 또는 사람마다 더 많은 인생 은유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에 대한 두 가지 개념화


잔나비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도 인생이 있다. 그 인생은 희로애락이 묻어 있어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아니 심지어 타인으로부터 받은 인생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아 쫓아왔다. 그런데 이젠 그 답을 ‘잃어버렸다’. 질문과 문제가 퍼즐로 개념화된다면 이는 간단한 문제이다. 퍼즐 조각을 맞추면 문제는 해결되고, 일단 문제가 해결되면 영원히 그 문제는 사라진다. 하지만 인생의 문제를 화학 용액의 침전물로 개념화해 본다면 화학에서 침전물은 용액에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반응하고 결합하여 불용성이 될 때 형성되는 고체로, 더 이상 액체에 녹아 있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용액 속의 여러 화학물질이 적절한 조건에서 결합하여 침전물을 형성할 수 있는 것처럼, 특정 요인들이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방식으로 정렬될 때 우리에겐 인생의 풀기 어려운 문제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즉, 앞에서 언급한 침전물 개념화에서는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해결될 뿐 언제든지 다시 등장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곡에서 잔나비가 맞닥뜨린 질문은 퍼즐이라기보다는 화학 용액의 침전물에 비견된다. 결국 문제가 풀어진 줄 알았는데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질문에 대해 처음에는 답을 다 ‘잊어’버렸다고 했다가, 다시 정정하여 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잊다’는 흔히 알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해 내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반면에 ‘잃다’는 가졌던 물건이 자신도 모르게 없어져 지금 갖고 있지 않다거나 길이나 방향을 분간 못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 둘 다 적절한 것 같지만 잔나비는 ‘잃다’라는 동사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가사에 ‘돌아서던 길목’이라는 표현에서 어느 정도 암시가 된다. 


답을 잃어버리고 길목은 이미 돌아서던 상황이라 이젠 되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눕는다’. 내 마음과 몸이 스스로를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할 때 침대에 온몸을 던져서 눕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허탈함을 넘어서 슬픔의 표정이 나에게 ‘손 흔든다’. 그런데 이 슬픔은 완전한 내 것이  아니다. ‘오는 건지 가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은 채 ‘저 어디쯤에 서 있을’ 뿐이다. 정답을 찾아서 완전히 내 것이 된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순간 나에게서 그 정답이 모습을 감춰버렸다. 한 번 찾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 문제의 정답을 다시 찾고자 시도만 한다면 이전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잘 안 된다. 힘들게 찾았던 것을 이제 막 다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놓쳐버리고 아무 원망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위로가 필요한 젊은이


삶의 경험과 지혜가 아직은 부족한 젊은 나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이때 지혜로운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그대로 두라고 어른은 말해준다. 다시 돌아가 이미 잃어버린 것을 찾는 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테니스 같은 운동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경우이다. 나의 서비스 게임에서 상대와 긴 랠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포인트 따는데 이렇게까지 수고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고 지루한 시간이 지난다. 마침내 내가 몸을 획 돌려서 멋진 포핸드로 잘 친 공이 상대 베이스라인에 딱 떨어졌다. 그런데 상대는 ‘아웃’이라고 외친다. 내가 봤을 때는 ‘인’인데도 그는 아웃이라는 것이다. 인과 아웃을 두고 둘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더 가까이 있는 상대의 판정을 믿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쩔 수 없이 0:15이 되었다. 다음 서브를 넣고 경기를 하는 내내 베이스라인에 떨어졌다고 생각한 그 공이 계속 생각나 경기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한 세트를 러브 게임으로 내주고 만다. 지나간 내 베이스라인 공을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두고서’ 나머지 경기에 최선을 다했으면 이길 확률이 높았을 것이고, 지더라도 허무하게 러브 게임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혜로운 내 편인 어른은 이렇게 지나간 것을 ‘가끔 뒤돌아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난다’라고 조언을 해 준다. 


내가 찾은 정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는 나를 미워한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나에게 행복은 오지 않고 ‘자꾸 아른대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몸서리친 적도 있다’. 행복이 손에 잡히질 않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고 이런 상황이 또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몰라 무서워서 몸을 떨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삶에서 겪는 전형적인 정서이다. 이는 미지의 막연함을 견디기 싫고 그 약속 없는 기다림 때문에 무서워하는 정서이다.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끊임없이 ‘바람 불고 눈 비 날렸다’. 그러다가 ‘한 계절 꽃도 피웠다’. 자연의 섭리에 내 몸을 맡기니 ‘한 시절 나는 자라서’ 더욱 성숙해진 모습을 갖추었다. ‘구름은 하얗다’. ‘하늘은 파랗다’. 이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지나간 일을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는 구름을 보고 하늘을 보면서 나는 살아간다. 그 결과는 자연을 닮은 성숙이다. 


성장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언제나 ‘내편’이 필요하다. 내가 잘했을 때뿐만 아니라 실수해도 내편인 사람! 힘들거나 지칠 때 울고 싶거나 하소연하고 싶을 때 찾아가는 ‘대나무숲’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대나무숲은 찾아오는 사람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충고하지 않는다. 그저 숲에서 이리저리 바람을 만나 쓸리는 소리만 들려주고 서 있을 뿐이다.


이제 젊은이는 지나간 후회와 좌절들과 헤어질 준비가 되었다. ‘바람 불었고 눈비 날렸고 꽃도 피웠’ 듯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지난 시간들, 그야말로 잃어버린 것들은 그 자리에 두고 깨끗하게 안녕이라고 인사할 수 있을 만큼 자라기 시작했다. 이제 그저 밝기만 한 빛이 아니라 많은 실패를 맛보고 실망에서 허우적대 보기도 한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날 준비가 된 것이다. 이렇듯 대나무숲과 젊은이의 만남은 거대 서사를 만들어내고 마침내 큰 울림으로 확장된다. 이 울림을 기대하는 즐거움이 내가 이 곡을 끊임없이 듣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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