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에서 얻은 신체화된 사랑
앨범: 환상의 나라
발매: 2021.07.28.
작곡: 최정훈, 김도형
작사: 최정훈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icBIl9ByXg
어느 외딴섬 로맨틱을
우리 꿈꾸다 떠내려 왔나
때마침 노을빛이 아름답더니
캄캄한 밤이 오더군
이대로 이대로
더 길 잃어도 난 좋아
노를 저으면 그 소릴 난 들을래
쏟아지는 달빛에
오 살결을 그을리고
먼 옛날의 뱃사람을 닮아볼래 그 사랑을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
거긴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그래 넌 두 눈으로 꼭 봐야만 믿잖아
기꺼이 함께 가주지
이대로 이대로
더 길 잃어도 난 좋아
노를 저으면 그 소릴 난 들을래
쏟아지는 달빛에
오 살결을 그을리고
먼 옛날의 뱃사람을 닮아볼래
사랑은 바다 건너 피는 꽃이 아니래
조그만 쪽배에로
파도는 밑줄 긋고
먼 훗날 그 언젠가
돌아가자고 말하면
너는 웃다 고갤 끄덕여줘
참 아름다운 한때야
오 그 노래를 들려주렴
귓가에 피어날 사랑 노래를
이 곡을 듣고 가사를 곱씹어 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의 시 〈섬〉이 생각난다. 사람들마다 이 ‘섬’을 다르게 해석한다. 섬을 사람들 간에 좁힐 수 없는 틈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과 사람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완충지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나는 이 중에서 전자의 해석에 더 끌린다. 우리는 이 세상에 홀로 태어난다. 물론 가족이라는 조직 속에서 태어나지만,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이기심은 우리의 이성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이성을 가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뜻한다. 각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존재하게 된다.
시인 정현종은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희망을 표현하지만 그렇다고 직접 그 섬에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잔나비의 이 곡에서 두 연인은 섬으로 간다. 그것도 외딴섬이다. 외딴섬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로 구성된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따로 떨어져 있어서 사랑하는 두 연인으로만 구성된 ‘저 세상’인 외딴섬이다. 그럼 왜 두 연인은 이 외딴섬까지 떠내려왔을까? 이들은 로맨틱을 꿈꾸었다. 둘만의 낭만을 꿈꾸고 있었다. 이 둘은 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모습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의 구속과 제약에서 벗어난 낭만적 사랑을 하고 싶었다. 쪽배를 타고 ‘아름다운 노을빛’을 즐기면서 한참을 떠내려오니 ‘때마침’ ‘캄캄한 밤’이 되었다.
어두운 밤 속의 외딴섬! 무서울 법도 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무서움과 외딴섬에서의 무서움은 느낌이 다르다. 이 세상에서는 두 연인을 구속하는 주변 환경에서 비롯한 두려움이지만, 외딴섬에서의 두려움은 자연 변화로 인한 두려움일 뿐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가 캄캄한 밤이 된 것이 두려움의 원인일 것이다. 어떤 두려움이 더 무서울까? 두 연인은 어두운 밤에 ‘길을 잃어도 좋다’고 한다. 이들은 외딴섬에서의 두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계속해서 ‘노를 젓는다’. 어둠으로 시야는 마비되었지만 청각은 살아 있다. 우리의 감각은 항상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각이 약한 경우에는 청각이 예민해진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두 연인의 경우 캄캄한 밤이 왔기 때문에 시각 대신 청각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외딴섬에 가기 위해 이제는 시각의 도움이 아닌 청각의 도움을 받는다. ‘노를 젓는 소리를 듣고’ 외딴섬을 찾아가기로 한다. 낮의 태양 빛이 아닌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에 살결을 그을릴’ 정도로 노 젓기는 계속된다. 그을린 피부를 보니 ‘먼 옛날의 뱃사람을 닮았다’. 뱃사람을 ‘닮아볼래’ 라고 하는 표현해서는 뱃사람 닮고싶은 이들의 의지가 베어 나온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이 현실 사회를 떠나 자기들만의 공간인 외딴섬으로 가는 것이 진심이다. 이런 진심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외딴섬에 굳이 가보지 않아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외딴섬에는 자기들이 찾고 있는 사랑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렇다고 수백 번 ‘말’을 해도 그녀는 듣지 않는다. 자기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계속 고집을 피운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눈으로 확인시켜주기 위해 기꺼이 함께 가주기로 하고 쪽배를 젓고 온 것이다.
말의 힘은 매우 강하다. 말로 상대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심지어 칭찬이라는 말은 고래를 춤추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는 말이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말은 이성으로 작동하는 사고 표현의 매체이지만, 사랑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힘으로 작동한다. 전혀 다른 영역에 있는 것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발휘하기에 부족할 때가 있다. 같은 영역에서 서로 가까이 있어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말과 사랑이 다른 영역에 속하므로, 사랑은 말과 언어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두 연인은 이성(‘말’)이 아닌 몸(‘눈’)의 지배를 받기로 했다. 두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고, 두 눈으로 봐야 외딴섬에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과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두 연인은 하나의 인식을 얻었다. ‘사랑은 바다 건너 피는 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조그만 쪽배가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면서 물줄기가 갈라진다. 마치 바다에 ‘밑줄이 그어지는’ 모습이다. 노트에 밑줄 긋기는 강조를 위한 것이다. 이들이 노를 젓고 항해하며 힘들게 알게 된 사랑에 대해 한 가지 지식을 바다라는 노트에 쪽배를 저어가며 밑줄을 긋고 있다.
사랑은 이 현실을 떠난 바다 건너 외딴섬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외딴섬에서 지내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먼 훗날 그 언젠가 돌아가자고 말하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동의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한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몸으로 대화를 한다. 눈으로 봐야 믿으니 몸을 이동시켜 외딴섬까지 왔고, 이제 약속한 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현실로 돌아가자고 제안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몸짓과 얼굴로는 환한 웃음의 몸짓을 보낼 것이다.
외딴섬에서 보낸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한때’였다. 외딴섬에서 나눈 사랑의 순간을 ‘사랑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사랑이란 외딴섬에서 피는 꽃이 아니지만, 이들이 그곳에서 나눈 감정의 순간들이 모여 순수한 사랑의 꽃이 되었다. 그런 순간들을 한 땀 한 땀 엮어서 만든 사랑 노래가 ‘귓가에 꽃피듯 피어난다’. 사랑은 결국 외딴섬과 같은 특정 장소에 미리 존재하던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몸으로 체험한 뒤 피어나게 하는 신비한 감정의 꽃이다.
이제 두 연인은 그들이 피운 사랑의 꽃을 갖고서 외딴섬을 떠나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삭막한 현실이고 제약이 많은 공간이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외딴섬에서 창조해 낸 자신들만의 사랑의 꽃을 갖고 돌아가니 두려울 게 없다. 그 사랑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몸을 움직인 경험에서 얻은 ‘신체화된 사랑’이다.
소박한 이 연인들의 사랑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소 모험적이고 거친 실천과 둘이 함께라면 길을 잃어도 좋다는 순수한 용기가 더해져 서투른 항해 길이 끝난 후에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훌쩍 성장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