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앨범: 잔나비 소곡집 Ⅰ
발매: 2020.11.06.
작곡: 최정훈, 김도형
작사: 최정훈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eaVK0zRQSc
머나먼 별빛 저 별에서도
노랠 부르는 사랑 살겠지
밤이면 오순도순 그리운 것들 모아서
노랠 지어 부르겠지
새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마저
불어오는 바람 따라가고
보고픈 그대 생각 짙어져 가는
시월의 아름다운 이 밤에
부르다 보면 어제가 올까
그립던 날이 참 많았는데
저 멀리 반짝이다 아련히 멀어져 가는
너는 작은 별 같아
Farewell Farewell
멀어져 가는
Farewell ooh
새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마저
불어오는 바람 따라가고
보고픈 그대 생각 짙어져 가는
시월의 아름다운 이 밤에
수많은 바람 불어온대도
날려 보내진 않을래
잊혀질까 두려워 곁을 맴도는
시월의 아름다운 이 밤을 기억해 주세요
Farewell Farewell
우리는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서로 많은 질문을 던진다. 혈액형이나 MBTI 혹은 종교가 무엇인지 물어본다. 그리고 꼭 빠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계절에 관한 것이다. 서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보고 이어서 왜 그 계절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말하기도 한다. 좀 엉뚱하지만 좋아하는 계절은 너무 진부하니 싫어하는 계절을 묻는 사람도 있다. 그 질문에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고, 봄은 활짝 피는 꽃 때문에 마음이 너무 들떠서 싫고,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마음이 너무 처져서 싫다고 말한다. 사실 난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그 이유는 여름이 지나면 바로 오는 것이 가을이기 때문이다. 낭만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나는 무더운 여름이 너무 싫어서 가을을 좋아할 뿐이다.
지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가을, 그리고 10월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어느 가을밤 창문을 열고 머나먼 별을 본다. 별은 현실 공간이 아닌 가상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별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날은 요원하다.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다. 상상력을 동원해 현실 공간을 가상 공간으로 투사해 본다. 현실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밤이 되면 오순도순 모여 그리움을 주제로 노래를 지어 부른다. 현실 공간에 있는 사랑과 그리움과 노래를 별의 가상 공간으로 투사해서 그곳에 사람 냄새가 나는 이 개념들을 펼쳐본다. 주인공은 이제 가을밤에 현실 공간이 아닌 어느 별의 가상 공간에서 사랑을 하고, 그리움도 느껴보고, 노래도 부르고 있다.
10월의 아름다운 이 밤에 가을바람이 분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도 가을바람을 따라간다.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다. ‘별빛이 바람을 따라간다!’ 바람이 불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 바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별빛은 빛일 뿐 이동의 속성은 없다. 그런데도 별빛이 바람을 따라간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다. 바람은 한곳에 머물지 않으니 잡히질 않는다. 그리움도 마찬가지로 손에 잡히지 않는 유동적 실체이다. 바람을 따라가는 별빛은 그리움을 느끼는 이 글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바람의 안내를 받아 그리운 사람을 찾으러 나선다. 어두운 밤이니 별처럼 밝은 빛을 켜고 바람을 뒤쫓는다. 주인공의 그리움이 너무 절실하지만 그리움은 감정이므로 지속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절실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 그리움의 감정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인공의 그리움과 보고픈 사람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계속 짙어져 간다. 주인공의 사고는 그리움으로 짙어져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이제 주인공에게 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움의 감정만이 주인공의 공간을 차지할 뿐이다.
‘지금’은 ‘오늘’이다. 오늘 앞에는 어제가 있고, 오늘 뒤에는 내일이 있다. 시간은 이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뉘지만 사실 과거와 현재, 미래 간의 경계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은 연속성을 띤다. 어제와 오늘이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니 ‘어제’를 부르면 지금 나에게 올 수 있을 법도 하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고, 과거에 그와 나눈 많은 추억 때문에 어제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지금의 나는 ‘어제’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그때의 추억을 지금 현실로 데려와 그 그리움을 손으로 만지고 싶다. 하지만 어제의 그리움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하루하루 현실의 시간이 미래로 향해 달리니 그 그리움은 현실에서 아련히 더 멀어져 갈 뿐이다. 멀어져 가는 모습은 마치 작은 별 같다. 현실의 시간과 공간에 있는 나에게 가상 공간의 먼 과거에 있는 별은 너무 작은 점일 뿐 지금의 나는 만질 수 없다. 멀어져 가도록 놔둘 수밖에 없다.
그리움을 찾아 나선 주인공에게 조력자는 바람이었다. 이 바람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운 사람의 흔적을 찾고, 그 흔적을 따라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런데 조력자가 너무 많다. ‘수많은 바람이 분다’. 어떤 바람을 따라가야 할지 주인공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리운 사람에 대한 마음이 너무 절실하니 아무리 많은 바람이 불어와도 그 바람을 날려 보내지 않고 온전히 다 받아들인다. 주인공은 그리움 자체를 잊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리움 하나를 움켜쥐고 있다. 마치 이 그리움을 놓기라도 한다면 자기의 생존이 위험하다는 듯이 말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10월의 아름다운 이 가을밤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움’은 ‘육체성의 결여’이다. 공간과 시간상 나에게서 멀리에 있다. 그래서 만짐을 거부하는 것이 그리움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그리움을 안고 산다는 것은 마음마저 병들게 할 수 있다. 육체는 없고 마음만 존재하니, 그 마음은 신체화되지 못해 허무하고 공허한 마음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처럼 위험한 것이 그리움이지만, 이 글의 주인공은 개의치 않는다. 끝까지 그리움을 기억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용감하다.
지금의 나는 위험을 피하면서 현실을 붙들고 때론 그 현실에 안주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그리움이 그러하듯 만져지지 않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그리움이 무엇인지 까마득히 잊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잔나비는 시월의 이 가을밤을 영원히 기억하라고, 밤하늘 작은 별 같은 그리움 속으로 용기 내어 깊이 뛰어들어 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