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과거와 현재, 미래
앨범: MONKEY HOTEL
발매: 2016.08.04.
작곡: 잔나비
작사: 잔나비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jS91UkHja8
그땐 난 어떤 마음이었길래
내 모든 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나
그대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 모든 걸 갖고도 돌아서버렸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남겨두겠소
다짐은
세워 올린 모래성은
심술이 또 터지면 무너지겠지만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남겨두겠소
그리운 그 마음 그대로
영원히 담아둘 거야
언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남몰래 날려보겠소
눈이 부시던 그 순간들도
가슴 아픈 그대의 거짓말도
새하얗게 바래지고
비틀거리던 내 발걸음도
그늘 아래 드리운 내 눈빛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우리는 아름다웠기에 이토록 가슴 아픈걸
이제야 보내주어.
그대도 내 행복 빌어주시오.
우리는 삶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누어 살아간다. 그 삶에서는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지만, 사랑만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서 아픔과 슬픔을 주는 사건은 없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여기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남녀가 있다. 이 두 남녀는 어떤 계기로 서로 알게 되고 친해지고 좋아하는 감정을 품게 된다. 그러다 헤어지기도 한다. 사랑의 최종 목적지가 결혼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서로가 느낀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니 말이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품게 되는 사랑의 단계에서 이유는 모르지만 ‘내 모든 것’을 그녀에게 준다. 내가 가진 것이 나에게 남지 않아 텅 비게 되지만 난 ‘웃을 수 있다’. 그녀는 이제 내 모든 것을 가졌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하나라고 생각하니 나에게는 없지만 그녀에게 내 모든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내 것이 된다. 그러니 내가 텅 비었지만 난 슬픈 것이 아니라 웃을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식과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내 본능이 깨어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내 모든 것을 그녀에게 바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이유를 모른 채 ‘내 모든 것을 갖고서’ 풍성한 상태인데도 나에게서 ‘돌아서버린다’. 나에게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버린다’. ‘돌아서는’ 것은 중립적 ‘돌아섬’이지만 ‘돌아서버리는’ 것은 부정적 ‘돌아섬’이다. ‘돌아서다’에 ‘버리다’는 조사가 붙어 있다. ‘버린다’는 것은 나쁘거나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버리는 행위이다. 물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는 헤어짐이 너무 싫다. 나의 관점에서 그녀가 나를 떠나는 것은 부정적이므로 ‘돌아서버리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녀의 관점에서는 마음 아프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 ‘돌아섰을’ 것이다.
이렇게 나와 그녀는 이별을 맞이했다. 이제 우리의 사랑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사건이 되었다. 함께 한 ‘뜨겁고’ 화려한 사랑은 가고, 현재 남은 나의 사랑은 ‘볼품없는’ 모습뿐이다. 볼품없는 사랑이지만 이 사랑을 나는 버리지 않는다. 미래에 다시 올 나의 사랑을 위해 그 볼품없는 사랑을 남겨두고자 마음먹는다.
사랑은 감정이다. 감정은 뜨거운 느낌이다. 그래서 사랑은 뜨겁다. 차가운 사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 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차가운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차가운 것은 이성뿐이다. 이것을 ‘냉철한 이성’ 또는 ‘차가운 이성’이라고 한다. 이성과 지식의 영역은 냉철하고 차갑게 습득한다. 하지만 사랑은 지식과 이성이 관여하지 않는 뜨거운 영역이다. 우리의 내장이 있는 깊은 곳에서 본능이 관여해 우리도 모르게 뭔가 서로에게서 끓어올라 사랑의 감정이 발현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의 감정은 ‘내장적 본능’이 작용한 결과물이다.
사랑이 하고 싶은 모든 생명체는 뜨거움을 느낀다. 이웃집 개가 사랑을 하고 싶어서 암내를 내는 상황을 미국영어에서는 The dog is in heat으로 표현하고, 영국영어에서는 on heat을 사용한다.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표시인 ‘발정’은 뜨거움의 속성을 갖는다. in heat의 경우에는 전치사 in 때문에 발정 상태에 ‘빠진’ 것이므로 사랑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내포한다. on heat의 경우에는 개가 발정 상태 ‘위에’ 있으니 그곳에서 뛰어 내려와 곧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다. 이는 사랑의 감정과 발정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지나간 사랑은 잊고, 남은 작은 사랑은 온전하지 않고 볼품없지만 미래 사랑을 위해 남겨두려고 마음먹는다는 점에서, 이 사랑은 in heat이 아닌 on heat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힘들게 노력해서 세워 올린 모래성이 무너지듯이, 감정이 아닌 이성을 동원해 구축한 ‘다짐’도 허물어질 수 있다. 이를 알지만 미래에 찾아올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린다. ‘언젠가 불어오는’ 사랑의 바람에 사랑의 그리움을 ‘남몰래 날려본다’. 바람에 날리던 그리움이 누군가에게 닿아 그녀가 내 그리움을 느끼고 이에 반응해 주길 기대해 본다.
아름답던 사랑의 순간과 버림받았다는 아픈 상처도 ‘새하얗게 바래지듯’ 사라질 것이다. 힘들어하면서 ‘비틀거리며 걷던 내 발걸음도’ 미래 언젠가는 가벼워질 것이다. 사랑을 잃어 그늘이 드리워진 ‘내 눈빛도 아름답게 피어나’ 다시 생기를 찾을 것이다. 모두 미래의 사랑을 생각하니 가능한 일이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사랑이기에, 그에 비례해 이별은 너무나 가슴 아프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보내준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미래의 내 새로운 사랑과 행복을 빌어달라고 간청한다.
흔히들 이별과 사랑은 반대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아름답고 행복하지만, 이별은 슬프고 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나비의 이 곡에서는 이별도 사랑에 포함시킨다. 잔나비는 남과 여의 존재에서부터 사랑 행위와 이별까지의 전체 시나리오를 사랑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랑’ 시나리오에서 ‘사랑 행위’라는 한 특정 부분이 사랑이라는 전체를 대표하는 환유적 사랑 해석이 아닌, 전체 사랑 시나리오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큰 것이다. 한 부분으로 쪼개고 분석할 수 없는 숭고한 것이다. 그런 전체로서 숭고함 그 자체인 사랑을 우리는 쪼개어 환유적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별의 슬픔도 사랑이므로 혹여 어떤 이유에서든 이별한 연인이 있다면 그 또한 사랑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잘 극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랑 중에 싸워 서로 감정을 다친 연인들도 그 또한 사랑이라 생각하고 잘 극복해 행복한 사랑을 유지하면 된다.
사랑은 양날의 칼과 같다. 한쪽 날에는 사랑의 기쁨이 있고 다른 쪽 날에는 사랑의 슬픔이 있다. 양날의 칼은 어느 한쪽 날만 사용하는 법은 없다. 양쪽 모두를 사용하는 것이 양날의 칼에 주어진 운명이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고 받아들여야 할 속성이다. 그런데 그 속성을 받아들이는 주체는 ‘우리’이다. 양날의 칼에 있는 손잡이는 우리가 쥔다. 우리가 그 칼의 주인이고 주체인 것이다. 사랑의 아픔이 타자에 의한 아픔이면 무기력감이 들겠지만, 그 아픔이 나로 인한 것이면 허무함이 아닌 반성과 성찰의 시간으로 가꿔 갈 수 있다. 이 소중한 시간들이 지나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가 되는 날에는 나의 발걸음과 눈빛마저도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