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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Dec 22. 2022

술과 스트레스 해소

우리 인간은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한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에 의지하는 동물은 우리 인간만일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에 의지하는 것에 관해서는 쥐도 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쥐의 스트레스와 알코올 섭취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는 실험이 있었다. 이전에 알코올을 맛본 적이 없는 건강한 쥐를 3개 집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양의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통제집단은 일상 스트레스가 없는 혼잡하지 않은 정상적인 실험실 우리에 넣었다. 급성 스트레스를 받는 집단은 거의 움직일 수조차 없는 매우 붐비는 작은 우리에서 하루 6시간을 보내고 1시간은 평범한 우리에서 보냈다. 만성 스트레스를 받는 집단은 일주일 내내 극심하게 붐비지는 않지만 불편하게 밀집한 우리에 넣었다. 우리 안에 음식과 두 가지 액체를 넣어 주었다. 하나는 수돗물이고 다른 하나는 수돗물에 에탄올을 많이 섞은 것이다. 


통제집단에 비해 급성 스트레스 집단과 만성 스트레스 집단의 쥐는 체중이 빠지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이런 쥐들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신호였다. 예상대로 통제집단의 쥐보다 두 스트레스 집단의 쥐들이 알코올을 더 많이 섭취했다. 흥미로운 점은 급성 스트레스 집단과 만성 스트레스 집단의 행동이 달랐다는 점이다. 급성 스트레스 집단의 알코올 섭취는 상당히 안정적이었고, 한 주가 끝날 무렵에는 통제집단과 다소 비슷해졌다. 반면에 만성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알코올에 열정적으로 의존했던 것이다. 즉, 일시적인 급성 스트레스 요인은 알코올의 도움 없이도 쉽게 적응되었지만, 장기적인 만성 스트레스는 알코올을 꾸준히 섭취하도록 자극했으며, 더 나아가 그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양이 늘어났다.


수렵채집인은 20~40명 정도가 모여 넓은 환경에서 사냥감과 식물을 찾아 배회했기 때문에 쥐 실험에서 말하는 통제집단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렵채집인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마을에 모여 농사를 짓고 정착을 하면서 함께 모여 살았는데, 그 인구는 200명 내지 300명이 되었다고 한다. 좁은 마을에 이 정도의 인구가 모여 계속 살았다는 것은 쥐 실험에서 장기적인 만성 스트레스 집단에 해당했을 것이다. 200~300명들 사이에서 이미 사유 재산이 있고, 부의 불평등, 사회 계급의 징후가 이들에게 스트레스 요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우리 조상들은 만성 스트레스를 받는 쥐처럼 느꼈을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했다면 이들은 이기적인 침팬지의 속성이기 때문에 서로 갈기갈기 찢을 정도로 치열하게 싸워 결국은 모두 멸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의 찬란한 문명을 창조하고 그 생명이 이어졌다. 그 이유는 이들이 스트레스를 잘 해소했기 때문이다. 만성 스트레스를 받는 쥐처럼, 이들도 술에 의지해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것이다. 결국 술은 수렵채집인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 문명을 이끌게 했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현대로 넘어와 술과 스트레스의 관계를 잠시 들여다보자.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비행기를 탔을 때는 기내식이 매우 풍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그 기내식은 인색해졌다. 그런데 이런 인색한 기내식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맥주나 와인 같은 술이다. 왜 그럴까?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온통 모르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채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만약 이기적인 침팬지들을 이코노미석에 태운다면 어떤 사단이 날지 예상이 된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상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고, 심한 경우에는 서로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서로를 갈기갈기 찢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좁은 이코노미석과 주변의 낯선 이들의 존재가 영장류 동물에게는 힘든 스트레스 상황이다.

이코노미석

우리 인간도 영장류 동물이지만 우린 이런 상황에서 큰 문제없이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달하면 유유히 걸어 나간다. 인간에게는 인지 제어 능력이 있어서 힘든 상황을 인내하고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인지 제어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 이때 술이 그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항공사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기내식 간소화 정책을 펴면서도 맥주를 기내식에서 빼지 않은 것은 좁은 비행기에서의 장거리 비행이 승객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우리 승객들은 돈을 주고 사 먹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제공되는 맥주에 손이 간다. 그리고 그 맥주를 가져다주는 승무원들도 아주 친절하다. 승무원들의 환한 웃음과 절도 있고 예의 바른 태도도 좁은 이코노미석에서의 비행이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을 역으로 암시해 준다. 

기내식 맥주

스트레스는 나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주변 상황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를 중심에 둔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이기적이고 이성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합리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지금의 상황이 나에게 불리하므로, 이기심의 피가 흐르는 영장류 동물인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아야 하고, 내 마음이 방랑하게 만들어야 하며, 이성을 내려놓고 계산을 하지 않아야 한다. 성인인 우리는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 PFC)이 완전히 성숙해 이성을 무기로 갖고 있다. 이 이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기 위해 적당한 양의 술로 PFC의 작동을 일시 정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성을 내려놓으니 이기심이 사라지면서 낯선 사람들로 빽빽이 가득한 좁은 공간에서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술로 PFC를 공격해 이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고서 수렵채집을 하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초창기 농부들은 급격한 생활양식의 변화에 수반되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관리하면서 문명의 창조를 이끌었고, 생전 모르는 사람들과 좁은 이코노미석을 탄 현대의 우리들은 아무런 유혈사태 없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내려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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