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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Dec 31. 2022

술은 유대와 품성의 척도이다

진정한 술꾼의 외적 조건

난 전라북도 전주에서 재수 생활을 했다. 입시학원에도 담임 선생님이 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약간 까맣고 목소리가 굵직한 국어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술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 선생님은 여담으로 술 잘 먹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아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알 턱이 없었다. 난 수업 내용에 집중할 때보다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 세 가지 조건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첫째, 술 종류를 가려서는 안 된다. 가령, “난 맥주는 싫어해요”, “소주는 독해서 못 마셔요” 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상대가 술을 권할 때 잔을 받지 않고 그만 마시겠다고 하면 안 된다. 이는 본인이 너무 취했거나 아니면 술 마실 기분이 아니라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세 번째 조건을 말하기 전에 이 마지막 조건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그게 뭘까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뜸을 들였다. 정답은 술을 마시기 전과 마시고 난 후의 말과 행동이 흐트러짐 없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마지막 조건을 듣고는 “그게 가능해?”라고 하면서 마음속으로 선생님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이 재미로 이런 말을 하시는구나 하고 가볍게 넘어갔다. 


어쨌든 이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술이 유대감을 증대시킨다는 특징과 관련이 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내가 슬링거랜드의 《취함의 미학》을 직접 번역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서, 세 번째 조건은 술이 그 사람의 기본 품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술과 유대감의 관계는 술의 사회적 기능을 암시한다. 사회성은 신뢰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하기를 어렵게 하는 액체로 된 자백 약인 술은 사회적 협력과 화합의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예는 수없이 많다. 술은 고기잡이 배를 같이 타고 출항한 어부들이나 항구의 선원들,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하는 일꾼들이 함께 어울려야 하는 상황에서 중요한 유대 기능을 한다. 많은 문화에서 성대한 술자리는 군사적 목적에도 부합했다. 이런 술자리는 전사와 군주를 결속시키고 더욱이 전사들끼리 결속시키는 역할도 했다. 더 나아가 술을 주고받는 것은 충성심과 헌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술을 나누면 소속감과 신뢰의 영역이 넓어진다. 밤새 술을 같이 마시면서 함께 토한 사람들은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을 우리 모두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모임에서 술을 공유하지 않는 것, 특히 내민 술잔을 거부하는 것은 심각한 모욕이나 적대 행위로 여겨진다.


많은 사회에서 술에 함께 취하는 것은 낯설고 적대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알고만 지냈지 친하지는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격이나 품성을 테스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끝까지 함께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능력은, 아니 어쩌면 취했지만 정신을 차리려는 자세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자신의 품성과 인격을 강하게 상징한다. 중국에서 성인(聖人)으로 칭송받는 공자를 두고 한 말 중에 “술에 관한 한 그는 한계를 두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도 장시간에 걸친 술자리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두고 “그는 원하는 만큼 마셔도 절대 취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함께 술자리를 하면 거짓말 능력이 손상되고, 타인과의 유대감이 증가하며, 기본 품성이 시험 된다고 했다. 그래서 공동의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의심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지만, 더 나아가 술도 잘 마셔야 한다. 술을 잘 마신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는 역설의 역설을 극복해야 하는데, 술의 종류를 가려서도 안 되고, 권하는 술잔을 모두 받아 마셔야 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취했다는 표가 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학원의 내 담임 선생님은 아마 술에 대한 이런 세 가지 조건을 책을 통해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선생님은 자신이 술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이 세 가지 조건을 말했다는 점에서 추측해 볼 때, 그는 수많은 술자리를 가지면서 불현듯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난 재수를 하면서 담임 선생님이 체험으로 얻은 귀한 조언을 공짜로 얻었고, 지금은 슬링거랜드의 《취함을 미학》을 읽으면서 그 담임 선생님의 그 세 가지 조건을 이론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술에 대한 세 가지 조건을 은연중에 실행하려고 노력했으며, 두 가지의 계기로 확인된 그 조건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 보려 한다. 

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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