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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Jan 04. 2023

사회적 성공을 위한 술 따르기

진정한 술꾼의 내적 조건

앞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술 잘 마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살펴봤다. 술의 종류를 가려서도 안 되고, 상대가 권하는 술잔을 모두 받아 마셔야 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취했다는 표시가 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진정한 술꾼의 외적 조건’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는 ‘진정한 술꾼의 내적 조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런 내적 조건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도(酒道)를 말한다. 


이 주도는 철저하게도 나의 주관에서 비롯된 주도이다. 난 그 주도를 ‘사회 성공용 주도’라고 이름 붙인다. 그렇다, 이 주도는 친한 사람들끼리의 친목에도 적용되지만, 나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필요한 술자리에서 특히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 주도에서는 철저하게 나라는 존재는 배제된다. 오로지 상대를 위한 주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상대의 술잔을 잘 챙겨라. 상대의 술잔은 너무 오래 비어 있는 상태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 시간이 2, 3분 이상이 되지 않도록 하라. 상대가 자기 술잔을 다 비우고 안주를 먹은 뒤 다시 대화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술병을 들고 상대에게 향하게 하면서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등의 제안을 한다. 상대가 나의 술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잔을 들면 그때 상대에게 술을 적당량 따라 주면 된다. 특히 상대가 자기 술잔을 잡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 위에 있을 때 술을 따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인간은 비어 있는 것을 싫어한다. 내 통장의 돈도 비어 있으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집에 들어갔는데 식구들이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있을 때도 기분이 가라앉는 법이다. 비어 있는 술잔도 사람에게는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법이다. 그러니 그런 빈 잔을 당신이 채워 주면 된다.


둘째, 상대가 나에게 술을 권할 때 반드시 감사의 표현을 한 뒤 내 술잔을 들고 그 술을 받는다. 그리고 받은 술은 그대로 테이블에 놓는 것이 아니라 술잔을 입에 대고 미량을 마시거나 아니면 입술에 대고 난 뒤 내 앞에 놓는다.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주었는데, 내가 받은 둥 마는 둥 하면서 그 받은 것으로 뭔가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내가 왜 줬지?”라는 등의 허무한 생각이 들 수 있는 법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잔을 받자마자 바로 원샷을 하는 행동은 상대를 당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때에 따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술을 따라 주면서 “한잔 쭉 들이키시게”와 같은 말을 하는 경우라면 예의상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상대가 나에게 뭔가를 주었는데, 내가 그것을 바로 탕진해 버린다면 상대는 “내가 뭔가를 또 줘야 하나”라는 압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상대가 술을 권할 때 잔을 마다하지 말라. 내가 너무 취했거나 아니면 술 마실 기분이 아니어도 상대가 내민 술잔을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술을 같이 나눈다는 것은 ‘이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고 서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러니 술잔을 거부하는 것은 당신과 협력의 의사가 없다거나 더 심할 때는 상대를 모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단은 감사의 마음으로 그 술을 받고 난 뒤 적당량을 입술에 댄 뒤 그냥 자기 앞에 내려 두면 되니 상대의 내민 잔은 무조건 받으라는 것이다. 


넷째, 분위기상 서로 잔을 부딪치면서 건배를 할 때 상대방의 술잔보다 너무 낮거나 너무 높게 들지 말고 비슷한 위치에서 잔을 부딪치면서 건배를 하라. 이때 시선은 나의 술잔이나 상대의 술잔이 아닌 상대의 얼굴로 향해야 한다. 잔을 너무 낮게 낮추면 내 몸이나 고개도 더 숙여 약간 비굴해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이 겸손으로 비칠 것이란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상대방보다 잔을 너무 높게 들면 예상되듯이 너무 거만하고 오만하게 보일 수 있다. 같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현재의 지위와 상관없이 대등한 위치라는 것이 전제되므로 그것에 맞게 잔 높이도 맞추는 것이다. 


다섯째, 상대가 술을 마시려고 잔을 들면 나도 내 잔을 들어 가볍게 상대의 잔과 부딪히면서 같이 마셔라. 물론 꼭 마셔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잔은 부딪힌 뒤 입술만 대고 내려놓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핵심은 상대의 술 마심에 동참을 하라는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술자리를 한다는 것은 나 혼자 술을 마시기 위함도 아니고, 상대가 혼자 술 마시기 위함도 아니다. 서로 솔직해지고 서로 협력하자는 의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술자리이다. 상대가 자신의 이성을 내려놓고 더욱더 진정을 보이고자 술잔을 들고 마시고자 한다면 나 또한 내 이성을 내려놓겠다는 뜻으로 내 술잔을 같이 들고 그의 행동에 동참해 주어야 한다. 


여섯째, 자기가 마신 술잔을 상대에게 주면서 그 잔에 술을 권하는 ‘잔 돌리기’ 문화는 지역마다 또는 모임의 성질에 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특히 코로나 위기가 닥친 이후로는 잔 돌리기 문화가 거의 사라진듯하다. 만약 잔 돌리기를 하는 상황이 있다면 마신 술잔을 바로 상대에게 주면서 술을 따르지 말고, 깻잎 등으로 잔 테두리를 전체적으로 잘 닦아서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깻잎으로 닦을 때도 까칠까칠한 윗면이 술잔 테두리에 닿게 하라. 부드러운 안쪽 면보다 그 바깥 거친 면에서 깻잎의 즙이 더 많이 나오므로 상대가 마실 때 깻잎의 향이 배어나 몸에 좋은 술을 마신다는 느낌을 상대에게 들게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제주대학교 박사논문 심사위원으로 초청을 받아 참여한 적이 있다. 논문심사가 끝나고 만찬 자리가 마련되었다. 메뉴는 소고기였고, 술은 소주와 맥주였다. 그때 나는 개인적으로 한라산 소주를 처음 마셔봤다. 사실 내 미각이 그렇게 민감한 편이 아니라 일반 소주와 한라산 소주를 정확히 구분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술자리에는 잔 돌리기 문화가 있었다. 그때 깻잎의 까칠까칠한 윗면으로 내 술잔을 잘 닦아서 잔을 돌리는 모습을 다른 교수님들이 보면서 흥미로워했다. 심지어는 그런 술잔을 받은 어떤 교수님은 뭔가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고, 깻잎의 향이 느껴져 건강해진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를 나를 따라 깻잎 활용 잔 돌리기 문화에 동참하였다. 어떤 교수님은 깻잎의 부드러운 안쪽 면으로 잔을 닦자 내가 지적해 주면서 다시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깻잎 활용 잔 돌리기로 그 술자리가 매우 유쾌하게 이루어졌다. 학과장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다음에도 꼭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달라고 말씀하기도 했다. 


일곱째, 안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사회적 성공을 위한 술자리는 배가 고파 배를 채우러 온 자리가 아니라, 나의 이성이라는 무기와 상대의 이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으면서 서로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자리이다. 안주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도하게 안주를 많이 먹는 것을 지양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성공을 위한 7가지 주도를 나열해 보았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술자리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상대를 위한 술자리이다. 나의 자의식을 버리고, 상대를 의식하는 술자리를 연출하는 것이 사회적 성공을 위한 주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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