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비 Dec 27. 2022

술은 화학적 악수이다

악수는 두 사람이 나누는 공개적이고 안전한 인사법이다. 악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수백 년 전 잉글랜드에서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수를 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악수는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을 통해 믿음과 평등함을 확인시켜 준다. 과거에는 왼손 소매에 종종 무기를 숨겼기 때문에 왼손으로 악수를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른손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오른손이 ‘검을 잡는 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악수는 무기가 없다는 것을 신체적 접촉을 통해 확인시켜 주고, 그로 인해 상대에게 서로 신뢰를 주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악수

이런 악수를 손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술도 악수의 역할을 한다. “술은 악수이다”라는 은유가 성립한다. 즉, 술은 ‘화학적 악수’인 것이다. 우리는 문화라는 동굴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 이기적인 영장류 동물이기 때문에 상대를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공적 동물로 변모하는데 도와줄 술이 필요하다. 상대를 신뢰하고 상대에게 정서적 헌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나만 이렇게 신뢰하거나 헌신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상대를 신뢰하지만 상대는 위선을 갖고 나를 변절할 수도 있다. 우리 영장류 동물은 진심으로 공동체가 되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서로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상대를 신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때도 술이 역할을 한다고 슬링거랜드 교수는 말한다.


우리 인간은 상대를 신뢰해도 되는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평가를 위한 단서로는 미세한 얼굴표정, 목소리 톤, 몸짓 언어 등이 있다. 3세 이상만 되면 상대의 얼굴을 보고 그가 ‘비열하다’, ‘착하다’처럼 상대가 믿음이 가는 협력자인지, 나를 배신할 사람인지 빠르게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어린아이에게는 냉철한 계산, 이성, 이기심의 중심지인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PFC)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리적 계상과 이성적 판단을 통해 상대의 신뢰도를 평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린아이들의 이런 평가는 본능적 평가, 직관적 평가, 내장적 평가이다. 결국 이런 평가는 이성의 힘이 아닌 정서의 힘에서 비롯된다.


정서는 냉철하고 ‘차가운 인지’가 아닌 무의식적인 ‘뜨거운 인지’를 이용한다. 뜨거운 인지는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살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1주일간 다이어트를 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살 좀 빠졌는지 봐달라고 한다. 만약 그가 “음~, 살이 좀 빠졌네요”라고 하면서 시간이 약간 지체되면 난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진정한 진정성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바로 반응이 나온다. 누군가 내가 그 질문을 하자마자 바로 웃으면서 “살 빠졌네요”라고 대답을 해주면, 난 너무 기분이 좋아 계좌번호 보내면 3만 원 입금해 주겠다는 농담을 던진다. 이처럼 정서의 얼굴표정은 정직하고 위조하기 어려운 신호이다. 진정한 웃음과 미소는 의식적 제어가 어려운 법이다.


위선자와 거짓말쟁이를 걸러내는 능력은 우리의 공동체 삶에서 중요하다. 다행히도 우리는 거짓말쟁이를 잘 탐지해 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은 무의식적인 정서적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는 교묘한 진화적 재주를 통해 공동생활의 중심에 있는 이 중추적인 위험, 즉 위선자가 우리의 헌신에 무임승차하는 위험을 해결한다. 우리는 이런 신호를 사용하여 상대를 평가하고,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그냥 멀리하기만 하면 된다.


“사기도 머리가 좋아야 친다”라거나 “거짓말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기꾼들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치밀한 계산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다. 속임수를 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인지 제어가 요구된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계산을 해야 해서 힘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즉, 거짓말을 하거나 정서를 속이는 것은 노력과 주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거나 진정한 정서를 표현할 때는 정직하거나 진실하게 보이는 것은 쉽고 힘이 들지 않는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싶다면, 한 가지 탁월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쟁이의 인지 제어를 하향 조절하여 이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인지 제어를 하향 조절한다는 것은 이성의 중심지인 PFC를 공격하는 것인데, 그 방법이 바로 술취함이다. 


사업가들은 중요한 사업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마지막에 악수를 한다. 이는 각자 서로 상대를 해칠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으니 나를 믿어도 좋다는 신호이다. 상대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싶을 때, 상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정한 정서를 보여주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같이 술을 한잔 하는 것이다. 술의 공격을 받은 상대의 PFC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상대는 복잡한 논리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둘이 마주 앉아 술잔을 같이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의 무기를 내려놓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무기는 바로 우리의 ‘이성’이다. 나는 내 이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기 위해 소주잔을 한잔 두잔 비우는데, 상대는 술을 마시지 않고 물이나 음료수만 홀짝거린다고 생각해 보자. 이는 그 상대가 자기의 이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감추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럴 경우에는 나도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말고 바로 헤어지는 편이 시간과 돈을 아끼는 지름길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진실과 신뢰를 증진시키는 술의 기능에 대한 실례를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이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가져온다. <피의 결혼식> 에피소드에서, 두 라이벌 일족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의 적에 대항하여 단결하기로 동의하면서 술에 흠뻑 젖는 폭음 연회를 연다. 흥청거리는 가운데, 한 하인이 분명히 구린 데가 있는 것 같은 등장인물인 볼튼 경(Lord Bolton)에게 술을 따르려고 하자 볼튼 경은 술잔 위로 손을 올려 술을 거부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볼튼 경은 전형적인 변절자로서, 술취한 상대 일족 모두를 냉혹하게 살해하는 일을 지휘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중요한 거래 상황에서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기 위해 술자리를 열어 같이 거하게 취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이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 상대를 주의하라는 것이 이 에피소드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술을 거부하는 볼튼 경

이처럼 술은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고, 변절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는 악수이다. 이런 악수를 마다하는 사람과는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신의 무기로 언젠가는 나를 배신하고 변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악수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함께 취함으로써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지적으로 무장 해제를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같이 화학적 악수를 하면서 이 공동체에서 신뢰를 공고히 하고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어떨까!

이전 19화 술과 스트레스 해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