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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Feb 16. 2024

초등 저학년, 책 읽기와 글쓰기의 골든 타임 2

아이들의 글쓰기

어른들은초등학생의 글을 보며, 고학년 아이들이 저학년 아이들보다 훨씬 글을 잘 쓴다고 여기곤 한다. 그런데 실제 아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고학년 학생의 글보다 저학년 학생의 글이 좋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어른이 쓴 글이건, 아이들이 쓴 글이건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글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의 글은 억지로 꾸며 쓴 글, 칭찬을 받기 위해 혹은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쓴 글보다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쓰는 글이 좋은 글이다.


초등 고학년 학생들이 다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글을 쓰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요즘은 사춘기도 일찍 오고, 초등 고학년만 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감추다 보니, 글을 쓸 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거기다 내가 쓴 글을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본다고 생각하면 더 표현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쓴 글을 보고 어른들이 너무 과한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이들은 글을 쓸 때, 아예 최소한 욕을 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글 안에서 진짜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초등 1, 2 학년 아이들은 다르다. 아직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보다 할 말이 훨씬 많은 나이이고, 어른들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을 하는 나이이다. 지난 글에서 저학년 아이들은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나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글도 마찬가지다.


결국 글이라는 것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쓸 글도 많은 법이다. 아마 브런치에 글을 쓰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쓸 말이 없는데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이해하실 거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쓴 시가 있다.


빗방울


아빠 차를 타고 가는데 달팽이들이 경주한다.

선을 그으면서 경주한다.

지쳐서 멈춘 달팽이도 있고

아주 잘 가는 달팽이도 있다.


아이는 무엇을 보고 어떤 감정으로 이 글을 썼을까?


아이가 아빠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창 밖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니 불현듯 달팽이들이 경주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그때의 느낌을 시로 표현했다.


좋은 글이다. 일단 이 글을 쓴 아이만의 생각과 표현이 담겨있어서 좋다. 창 밖의 빗방울을 보며 누구나 달팽이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아이만의 상상이고, 아이는 글에서 그 상상을 너무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했다.


이렇게 자신의 상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초등 저학년이다. 그러니까 초등 저학년은 표현력을 기르기에 좋은 연령대이다. 그래서 글의 길이나 형식,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보다는 그저 즐겁게 자기의 상상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아이들을 살리는 글쓰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아이들의 글을 죽인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정제되고 깔끔하게 쓴 글을 원하고, 깔끔해 보이는 글을 칭찬한다. 반대여야 한다. 어린 나이일수록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우선이다. 풀어놓은 것이 많아야 그 안에서 정리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주저리주저리 풀어놓기도 전에 정리하길 권한다.


독서감상문도 한몫을 한다. 사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낀 점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른한테도 어렵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마치 실과 바늘처럼 책을 읽었으면,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라고 강요한다. 심지어 그런 글을 많이 쓰면 상을 주는 학교도 있다. 


초등 저학년은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 본인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소재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소재다. 나의 일상과 내 머릿속 상상이 초등 저학년 아이에게는 가장 잘 알고 있는 글감이다.


정돈된 문장을 쓰고 깔끔한 글을 쓰는 것은 초등 고학년이 되어 시작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저학년 시기에 자신의 감정을 풀어쓰는 표현력을 기르지 않으면 고학년이 되어서도 1차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문장으로만 글을 쓰게 된다.


초등 저학년은 글쓰기의 기본기를 다지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단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아니 한만 못한 법이다. 그들에게 본인이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주자. 그게 아이들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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