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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사고자로 살아가기

by Book끄적쟁이

커버사진 출처: 픽사베이


뇌는 귀중한 영역을 비워두지 않는다


A는 6개월 만에 시력을 잃고 뇌 손상과 뇌성마비를 앓았다.

B는 열네 살 때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딱 한 번 듣고 똑같이 연주해 냈다.

A와 B는 '레슬리 렘케'라는 동일 인물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와 같이 불치의 장애와 신이 내린 재능을 동시에 지닌 이들을 '서번트'라고 한다. 대부분 좌뇌 측두엽 장애를 안고 있다. 언어를 듣고 이해하는 청각기능에 문제가 있어 사회성이 매우 떨어진다. 그런데 뇌는 용도 변경에 매우 유연하다. 좌뇌의 손상으로 깨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우뇌의 특정 영역이 비범한 수준으로 발전한다. 언어를 잘 모르는 대신 음악의 천재가 되기도 한다. 뇌는 귀중한 영역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명석함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현대 사회는 우뇌를 차별한다. 우뇌 반구는 비언어적, 창의성과 관련이 있고, 언어와 논리, 사회성은 좌뇌 반구와 관련이 있다. 많이들 창의성의 중요성을 부르짖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을 잘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좌뇌형 인간'을 선호한다. 그런 사람이 학교에서는 '인싸'가 되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한다. 보통 인간의 뇌는 사회적, 감정적 처리나 인지적 처리 가운데 한 가지에 더 치중해서 발달한다. 그럼 반대로 사회적, 감정적 처리 대신 인지적 처리가 발달한 '우뇌형 인간'은 누구일까. 대표적인 게 바로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그들은 지능과 언어 발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외부와 의사소통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극한의 T 성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742042_57047_1535.jpg 출처: 공감신문


자폐증과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데 비유하자면,

자폐증은 '자신만의 세상'에 살고, 아스퍼거 증후군은 '우리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다고 할 수 있다.


너드, 우리 미래의 설계자

머리는 비상하나 현실감이 떨어져서 너드나 브레이니악으로 놀림당하던 아이들이 훗날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 스티브 실버만 <뉴트로라이브>


T발 T발 거리며 조롱하고 무시했던 너드가 훗날 나의 '고용주'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성공한 '야스퍼거'인 일론 머스크를 보라. 그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어서 종잡을 수 없고 친해지기 어렵다. 여동생이 자기랑 아는 척하지 않는 조건으로 파티에 데려갔을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졌다. 그런 그가 세상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회생활에서는 불리했던 요소가 기계 장치를 만들 때는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재능과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회를 유익하고 풍요롭게 해 줄 학습 방식과 사고방식을 통합할 수 없다. 남다른 사람들이 기여하는 재능과 기술은 그들의 니즈에 맞는 방법을 파악하느라 겪는 일시적 불편함을 훨씬 능가한다.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데 대인관계 기술이 대수일까.


재능을 꽃피우는 것이 장애를 보완하는 지름길

20230202000087_0.jpg Vietnam Veterans Memorial, 1982 National Mall, Washington D.C.
 [마야 린 공식홈페이지 캡처]
같이 놀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죠.
- 마야 린, 공간 디자이너


같이 놀 친구가 없는 것이 비극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서번트나 아스퍼거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장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하나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들은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인간으로서 쉽게 범접하지 못할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재능을 보이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인내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성공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재능을 꽃피우는 것이 장애를 보완하는 더 나은 치료 방향이다.


온전히 일에만 집중하여 만든 작품은 100마디 말을 대신한다. 예술과 기술의 세계에서는 눈앞의 작품이 백장의 이력서보다 더 설득력을 가진다. 작품의 우수성이 검증되면 창작자의 특이한 면모를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면접이나 대인 관계에 약점이 있는 이들에게 실력이 가장 중요한 예술, 기술 산업 분야는 가장 적응하기 쉬운 곳이다.


상호 보완적 사고방식의 멋진 합체


서번트나 아스퍼거 모두 '시각적 사고자'들이다. 만약 '사물 시각형 인간'이라면 그래픽 디자이너, 예술가, 숙련된 장인, 건축가, 발명가, 기계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이 적합할 것이다. '공간 시각형 인간'이라면 통계학자, 과학자, 전기공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이 재능을 발휘하기 좋은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둘을 비교하자면,

사물적 사고자는 외향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편이고,

공간적 사고자는 내향적이고 세부 사항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성향은 서로 보완을 통해 멋진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애플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마이크로소프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구글

마크 저커버그와 에두아르도 샤베린의 페이스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크 기업 4곳은 사물적 사고자와, 공간적 사고자가 함께 고민하고 꿈을 꾸면서 시작됐다. 사물적 사고자는 컴퓨터를 만들고, 공간적 사고자는 코드를 작성한다. 산업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만들고 엔지니어는 그 디자인이 작동하게 한다. 건축가는 비전을 품고, 엔지니어는 그 비전을 실행에 옮긴다. 세상의 많은 혁신들이 이런 시각적 사고자들의 조합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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