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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by Book끄적쟁이

커버사진 출처: 한국일보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건 아니다


저는 그 외뿔고래와 같습니다. 낯선 바다에서 낯선 흰 고래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리의 사고방식은 스펙트럼 상의 어딘가 존재한다. 스펙트럼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란 의미다. 아마도 언어형 사고자에 가까울 당신을 위하여 '빨주노초파남보' 방식으로 구분하자면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언어형 사고자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어야 의미가 통한다. 공간 시각형 인간은 코드와 패턴, 추상을 이용해서 세상을 이해한다. 사물 시각형 사고자는 이미지를 모아 마음속에 정리한다. 어떤 이미지가 중요하거나 흥미로우면 그걸 반사적으로 사진 찍듯이 저장하는 것이다.


우영우가 바로 사물 시각형 사고자이다. 법조문이나 판례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달달 외울 수 있는 것은 한 번 본 것을 이미지로 저장하는 완전기억능력 덕분이다. 하지만 비범한 플러스 요인만큼 반대급부로 사회성이나 감정 표현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중요시하는 언어형 사고자의 세상에선 '이상한' 변호사일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눈을 감은채 에어팟을 끼고 클래식 듣고 있는데, 느닷없이 헤비메탈이 고막을 때리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변화를 싫어하고, 틀에 박힌 행동을 하며, 자기의 관심거리에만 집중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의미로 '자폐(auto: 자신 + ism: 증상)'라고 부른다.

b3a5493b-c585-47cf-974b-0bcca9e63277.jpg 출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디스패치


다를 뿐, 열등하지 않습니다


특정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핸디캡 자체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재능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 난독증을 앓고 있는 작가 토머스 웨스트


사물 시각형 사고자의 문제 해결은 연상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머릿속에서 연관된 사실적 그림 또는 영상필름이 휙휙 지나가는 형태로 파악하기 때문에 이미지화할 수 있는 문제는 금세 익힐 수 있다. 예를 들어, 딱 한번 가봤던 장소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기계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물건을 만들고 조립하는 실제 작업에 강점을 가지며 그런 활동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크나큰 난관은 이미지화할 수 없는 것들이다. 빠르게 전달되는 언어 정보나 숫자와 수식이 나열된 대수학 같은 것 말이다. 교사가 교과 내용을 빠르게 전달하는 교실에서 시각적 사고자인 학생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라. 안전사고 등의 이유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현장을 방문하는 체험학습은 점점 줄어들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어만 가고 있다. 사물 시각형 사고자에겐 고문이나 다름없다. 독수리에게 달리기를 잘하라고 다그치는 격이다.

성적 하락은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내용에 결함이 있다는 뜻일 수 있다. - 템플 그랜딘


무지개는 일곱 빛깔이 아니다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다. 또 '자폐'이라고 하여 병적인 상태로 해석한다. 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 상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장애인이나 병자로만 취급하면, '색다른' 능력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수많은 천재들이 함께 걸러질 위험이 있다. '비주얼 씽킹'이라는 책을 보면 두 살 반이 되도록 말을 잘 못했던 템플 그랜딘은 '뇌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녀의 어린 시절이던 1940~50년 대는 의식발달에 반드시 언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시대였기에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 아이로 취급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엔 이미지가 먼저고 말이 나중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림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동물의 이동경로에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가축시설을 만들었다(미국 농장의 60% 이상이 채택한 시스템이며 지금도 곳곳에 확대 도입되고 있다).


장애인이자 병자였던 그녀가 동물학자이자 대학교수로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그녀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그녀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어머니와 고등학교 스승은 '자폐'를 '장애'로 해석하는 대신, 삶의 살아가는 '방식 차이'로 바라보고 그에 적합한 노출과 멘토링을 해주었다. 그녀의 엄마는 말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딸이 흥미 있어하는 방식으로 조기 개입하여 언어를 익히게 했고, 혼자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나친 개입을 삼갔다. 고등학교에서 그녀를 본 칼락 선생님은 '착시 현상'을 만들어내는 기계장치 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그랜딘의 재능을 학교가 알아보도록 도와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랜딘을

정상이 아닌 비정상

일반이 아닌 특수로만 바라볼 때,

그들은 신경학적 다양한 특성 중의 하나를 가진 사람으로 그랜딘을 대했고, 그에 맞는 경험과 교육을 제공했기에 지금의 그랜딘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지개는 일곱 빛깔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1.jpg?ip=x480 무지개는 '정확히' 일곱 빛깔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이해하려면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한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 템플 그랜딘


*막간 상식

이케아 테스트(by 템플 그랜딘)

: 시각적 언어적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


일단 가구를 하나 사서 조립할 준비를 한다. 이때 당신은 설명서를 읽는가, 아니면 그림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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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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