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사진 출처: CNN
아프리카 하드자족
아프리카 하드자족에겐 세 가지가 없다. 심혈관계 질환, 불안감, 우울증.
세 가지 모두 산업화된 현대 사회가 도래한 이후 급속도로 증가한 유행병들이다. 하드자족은 달리기처럼 힘든 고강도 활동을 두 시간쯤 하고, 걷기처럼 가벼운 활동을 여러 시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생활패턴이 형성된 것은 이들이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부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8화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뇌의 목적은 오로지 움직임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몸은 과거의 조상과 '연결'되어 있다.
사냥과 채집은 분업이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매머드 같은 큰 동물은 사냥하기 힘들고, 채집한 열매들을 충분한 수량만큼 옮기기 어렵다. 다 함께 일하고 골고루 나눠먹는다. 결국 잘 나눠 먹는 집단이 생존할 가능성이 더 컸다.
생존에 유리한 방식이라면 그러한 행동을 더 유발하기 위해 뇌는 보상책(?)을 마련한다.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통증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을 분비하는 것이다. 이 물질을 확실하게 증가시키는 세 가지가 있다. 대마초, 운동, 사회적 연결이다. 대마초(마리화나)는 '엔도카나비노이드'를 모방한 화학물질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중독성 있는 마약이다. 운동의 경우 너무 느리거나 혹은 진이 빠질 정도로 격렬하게 달렸을 땐 분비되지 않는다. 가벼운 러닝을 했을 때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가 세 배 가까이 높아진다. 달리기 자체가 아니라 중간 강도로 꾸준히 하는 신체 활동이 핵심이다. 사회적 연결은 단체 운동에서 완벽한 호흡을 이뤘을 때 느끼는 '집단적 즐거움'을 뜻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또 자기들보다 더 큰 존재와 연결됐다고 느낀다. 그렇게 우리 몸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눈부신 햇살을 받아 하늘과 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인간으로서 우리 사이의 경계도 사라집니다. 그 순간, 나는 행복의 절정을 맛봅니다.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니까요. - 책 '움직임의 힘'
기계와 전자 장치로 가득한 금속 깡통에서 살 때는 눈곱만 한 새싹을 보고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뿌리가 있다. - NASA의 블로그 '스페이스 크로니클스'
지구의 리듬과 냄새와 소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이들은 자연의 신호를 갈망하게 된다. 우주 정거장에 있으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이 달라진다. 서울의 홍릉수목원에는 멋들어진 숲길이 있다. 우울증 치료를 받는 숲을 걸었던 사람들 중 61퍼센트가 차도를 보였다. 병원에서 심리치료만 하는 경우보다 세 배나 나은 결과였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는 건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다. 인간의 뇌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자연과 호흡하며 생활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자연 속에 있을 때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 그렇게 우리 몸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인간의 몸과 뇌는 움직임, 다른 사람, 자연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동기화된 움직임'은 이렇게 연결된 느낌을 경험할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동기화된 움직임'이란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며 많은 사람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일치단결의 감각은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운명을 강하게 결부시킨다.
멀게는 '2002 한일 월드컵', 가깝게는 '싸이의 흠뻑쇼'를 떠올려 보라.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일치단결하여 '집단적 열광'에 빠져들었다.
스마트폰의 발달은 '댄스 챌린지'라는 형식으로 집단적 열광을 구현하기도 한다.
동기화된 움직임은 단순히 친목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만 유용한 게 아니다. 커다란 위협에 함께 대처하거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위로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집단 행위를 통해 각자의 두려움, 혼란, 슬픔을 내려놓고 집단 안에서 차분히 숨을 쉴 수 있다. 동기화된 집단은 분리된 개인이 아니라 더 뛰어난 단일 개체로 인식된다. 함께 움직이면 외부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덜 위협적으로 보인다.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닥치면 혼자서 다 할 수 있다는 환상은 사라지게 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의 일이다. 육상 400미터 준결승에서 세계 기록 보유자 영국의 데릭 레드몬드는 힘차게 출발했다. 그런데 15초쯤 지나 갑자기 오른쪽 다리를 움켜쥐었고, 2초 뒤엔 바닥에 쓰러졌다. 오른쪽 다리 힘줄이 끊어진 것이다. 진짜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였다. 정체불명의 중년 남성이 그에게 다가갔고 레드몬드는 그에게 어깨를 기댔다. 다른 선수들이 이미 경기를 끝낸 상황에서 레드몬드는 남자에게 의지한 채 왼쪽발로만 뛰어 천천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레드몬드를 부축한 남자는 그의 아버지였다. 강인한 육상 영웅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걸 알려준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아니 연결되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