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사진 출처: 한소희 인스타그램
〈불안의 서〉라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꽤 오래 읽고 있어요. 그 책에 인상 깊은 말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24시간 동안 잘 때만 빼고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래요. 그런데 우리는 잠을 자거나 운동을 하거나 단순한 노동을 하는 작은 행동만으로도 불안을 망각할 수도 있어요. 인간의 육체는 생각보다 되게 과학적이에요. - 한소희
한소희의 인터뷰 이후,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800페이지짜리 벽돌책이 수백 권 팔렸다. 스타 파워도 있겠지만 그만큼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인간의 육체는 되게 과학적이다. 정신과 육체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정신이 신체에 영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체 또한 정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금 겪고 있는 '내 마음의 문제'를 신경계의 기능 이상이라고 보게 되면, 순식간에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에이미는 매일 아침 30분 동안 운동을 하는 습관을 길렀다. 처음에는 그저 의무감에서 할 뿐이었으나 곧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에이미는 점차 스스로 불안감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느낌은 불안장애 성향을 극복할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 '운동화를 신은 뇌' 중에서
잠잘 때를 제외하고 늘 따라붙는 불안이 다른 장애와 다른 점은 신체적인 증세에 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불안이나 공황발작은 더 심해진다. 그런데 그런 반응이 일어나는 똑같은 활동이 있다. 바로 유산소운동이다. 달리기를 해도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진다. 하지만 그때는 몸에 좋다. 우리 뇌는 불안 증세를 긍정적이고 스스로 불러일으킨 것, 통제가 가능한 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낸다. 운동을 자꾸 하다 보면 신체가 흥분하는 현상에 익숙해지고, 흥분하는 현상이 꼭 해로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사실 상황이 달라진 건 없다.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행동과 태도만 바뀌었을 뿐이다.
운동을 하면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분비가 늘어난다. 이 신경전달물질들은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로토닌은 두려움을 억제하는 전전두엽(현대인의 뇌)의 실행능력을 향상시키고, 편도(원시인의 뇌)를 진정시킨다. 노르에피네프린은 흥분조절 신경전달물질로 불안의 순환고리를 차단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행복한 느낌이 들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도파민은 의욕과 경각심을 높여주는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이 세 가지와 신경세포 성장인자의 생성이 점차 줄어들면서 신경재생도 함께 줄어든다. 또 아직 젊더라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증에 빠지면 마찬가지의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늙고, 병들고, 죽느냐 활기차게 살아가느냐는 운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우울증은 희망이 없는 환경에서 자원을 보존하려는 생존 본능
- 정신과 의사 알렉산더 니쿨레스쿠
현재 사회를 좀먹는 우울증은 사실 아주 오래된 원시 본능이다. 맹수의 위협이나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 꼼짝 않고 있음으로써 위험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에너지 보존을 위한 일종의 동면이나 마찬가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의 해마는 정상인보다 최대 15퍼센트까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줄어든 크기는 우울증을 겪은 기간에 비례했다. 두뇌 활동이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는 걸 생각하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우울증이란 결국 뭔가를 성취하려는 행동이 결여된 것이다. 이때 운동은 부정적인 신호의 방향을 바꾸어 뇌를 동면에서 깨어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당장 증세가 완치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뇌가 활성화된다. 몸을 움직이면 뇌는 어쩔 수 없이 제 기능을 하게 된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약을 복용하면 신체에 활력이 생긴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슬픈 감정이 사라진다. 반대로 인지행동요법과 정신요법은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어 먼저 기분이 나아지게 한다. 그러면 의욕이 생기게 되고 몸의 상태가 좋아진다. 운동이 좋은 점은 두 측면에서 동시에 문제를 공략한다는 점이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활력과 기분을 함께 향상시킨다. 게다가 운동을 하면 상황을 스스로 지배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부적절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이불 밖으로 나와서 잠시 걷는 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단지 나가서 걷는 것은 계획 따위도 필요 없는 손쉬운 활동이다. 여기에 더해 만보기, 체중계, 심장박동 측정기 등으로 걸음, 몸무게,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행위는 노력을 쏟을 방향을 제시해 주어 지속적으로 운동에 집중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밖을 벗어나기 힘들다면?
이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야 할 때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운동을 하는 것은 혼자서는 성취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