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리스본 1 일차-푸니쿨라

비슷한 듯 다른 푸니쿨라, 그리고 엄마와 딸

by 카이저 소제

황금빛으로 물든 리스본 시내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은 후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알칸타라 전망대 앞에서 구글지도 켜고 몇 분 걷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 경사길에 노란색 푸니쿨라가 그림처럼 서있다.

푸니쿨라, 언덕이 많은 리스본의 육상 케이블카쯤 되는데 포르투갈어로는 '아센소르'라고 불린다.

생김새는 트램과 비슷하지만 트램보다는 작다. 트램이 도심을 거미줄처럼 누비고 다니는 것과 달리 푸니쿨라는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의 오르막 내리막 양 방향으로만 운행한다.

리스본의 지형특성상 생긴 교통수단이 리스본을 상징하는 관광자원이 됐다고나 할까.

무려 19세기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운행 중이라고 하니 대단 하달밖에.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을 견디며 관광명소로 거듭난 것이 여전히 소용있다는 것, 참 멋지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단지 관광객 유인책으로 경쟁하듯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출렁다리며 케이블카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리스본에는 모두 3개의 푸니쿨라가 있다.

노랗고 빈티지하고 작고, 비슷하지만 어딘가 조금씩 다른 푸니쿨라. 저마다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글로리아 푸니쿨라, 비카 푸니쿨라, 라브라 푸니쿨라.

리스본 첫째 날에 우연히 마주치고 내친 김에 탑승도 해본 푸니쿨라의 이름은 '글로리아 푸니쿨라'.

그라피티가 가득한 거리풍경을 배경삼아 서있는 모습이 멋스럽다.


자연경관이 멋지기로는 리스본 셋째 날에 본 <비카 푸니쿨라>가 압도적이었다.

리스본 여행안내 책자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을 비카 푸니쿨라 앞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높은 언덕 위에 서서 보면 푸니쿨라 뒤로 파란 하늘과 테주강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말마따나 그냥 찍어도 그림엽서다.

노란색 비카와 파란 하늘과 테주강, 그리고 좁은 언덕길의 정취가 꽤 조화롭다. 비카 앞에서 인증 사진 한 장 남기려면 참을성 있게 줄을 서야 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태연하게 포즈 잡을 용기도 더불어 필요하다.

라브라 푸니쿨라는 도보여행 중에 만날 수 없었다. 굳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듯.

아, 포르투의 히베이라 광장에도 푸니쿨라가 있다.

바로 긴다이스 푸니쿨라.

긴다이스 푸니쿨라는 걸어서 오르내릴 수 없는 가파른 언덕을 아래위로 씽씽 달린다. 멀리서 보면 노란 장난감 자동차가 절벽 위를 달리는 듯하다. 긴다이스 푸니쿨라를 타지 않으면 굽이쳐 돌아가는 아주 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우리는 천천히 경치를 보고자 계단을 이용했다만.


글로리아 푸니쿨라를 본 첫 느낌은 '어머, 예쁘다'는 감탄.

그리고 또 드는 생각이 '얘가 움직이기는 해 ?' 라는 의구심.

마치 전쟁기념관에 놓인 탱크같이 그냥 전시용이나 관상용, 혹은 사진스폿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푸니쿨라가 빈티지를 넘어서 너무 낡아 보이기도 하고, 거리 배경이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그라피티로 가득해서 더 그랬던 듯하다.

노란 푸니쿨라 옆 건물 벽에는 체 게바라 초상화와 뜻을 알 수 없는 알파벳 조합이 화려하게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얼핏 보니 그라피티 그림 속에 망치도 보인다. 뜻은 몰라도 메시지는 이해가 되는 뭐 그런.


혹시나 운행을 하나 싶어 푸니쿨라 입구 쪽으로 가보니 운전기사도 없고 문이 닫혀있다.

주위를 살피니 가로등에 붙어있는 종이가 보인다.

줄줄이 숫자가 내려 적힌 것으로 보아 운행시간을 적어놓은 듯하다.

가장 근접한 출발시각을 확인하니 6시 10분 출발이다.

그리고 현재시각, 정확하게 6시 10분.

이건 뭐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 것 아니냐고.


곧 가면을 쓴 듯이 무표정한 운전기사가 오더니 앞쪽 출입구 낮은 철문을 옆으로 드르륵 밀어서 열어준다. 승객은 우리 포함 4명. 단출하다. 우리 외 두 사람은 여행객으로 보이는 노부부(아마도).

한쪽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부축해서 푸니쿨라에 탑승하는데 어르신들이 우리보다 더 즐거워한다.

푸니쿨라 탑승으로 드디어 리스보아 카드사용을 개시했다. 다소 쫄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태그 했는데 문제없이 띠릭~잘된다. 지금부터 이틀 동안 아무쪼록 부지런히 사용해서 본전을 팍팍 뽑아야 된다.

푸니쿨라 안에는 딱딱하고 기다란 나무의자가 양옆으로 길게 놓여있다. 당연히 승차감은 별로다. 고지대를 오르내리는 서민의 발이니 실용성과 편의성이 중요할 터. 그리고 이런 것은 승차감이 별로인 게 더 재밌기도 하다.

소리도 요란하게 우당탕 덜커덩 슝슝...순식간에 내려간다.

걸어서 오를 때는 숨차게 올라왔건만 너무 쉽게 빨리 내려가버리니 조금 아쉽기도.

딸은 푸니쿨라 탑승이 시시한 눈치다.

롤러코스트나 드라켄 같은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좋아하니 땅에 얌전히 붙어서 가는 우당탕 덜커덩 슝슝이 재밌을 리 만무하다.

'이게 뭐야?' 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딸, 옆에는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도 앉아있다.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할머니랑 눈이 마주쳐서 같이 활짝 웃었다.

키가 커서 구부정해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와 나는 덜컹대는 푸니쿨라에 엉거주춤 중심을 잡고 선 채 좌우를 열심히 살폈다.

언제 또 와보겠냐. 하나라도 더 봐야지.

불과 몇 분 만에 내려가니 너무나 순식간이라 무엇을 봤는지도 잘 모르겠다.

앞을 보면 운전기사 등짝만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건물 벽, 왼쪽으로는 그라피티가 여기저기 그려진 빈티지하고 으슥해 보이는 거리와 골목.

밤에 걸어서 내려오기는 다소 외져 보이긴 한다. 그래서 알칸타라 전망대 근처는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했구나 싶다.

푸니쿨라에서 내리는데 맞은편 도로, 즉 푸니쿨라가 올라가는 쪽의 승강장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아무래도 오르막길 승객이 더 많을 테지.

손님이 많으면 가면 쓴 듯 무표정한 기사님 얼굴 표정이 좀 누그러지려나.


푸니쿨라에서 내린 곳은 희한하게도 숙소 근처였다.

낮에 택시 타고 내렸던 그 광장 앞이다.

마침 푸니쿨라가 보이던 차에, 또 마침 출발시간이라 지친 다리도 쉴 겸 탔을 뿐인데 내리고 보니 집 근처다.

장장 몇 시간을 걸어 다닌 길을 단 몇 분만에 직선코스로 내려올 수 있구나.

새삼 리스본 시민들의 오랜 교통수단에 찬사를!


숙소로 가는 길 골목 입구에서 딸이 저녁을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낮에 먹다 남긴 포장한 음식을 숙소에 두고 나와서 저녁 때거리 걱정은 안 했는데, 딸이 불만을 제기한다. 먹다 남은 음식으로 저녁을 먹기는 싫다고.

엄마와 딸은 일상이 부딪힘의 연속이다.

나는 남은 음식이 많으니 즉석 누룽지랑 먹으면 충분하다는 입장, 딸은 구질구질하게 먹다 남은 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

9만 원짜리 점심을 절반도 못 먹고 남겼으면 저녁으로 먹을 수도 있지..라는 말을 삼켰다.

아등바등 생존에 주력한 세대와 요즘 세대가 같나.

근데 식당 가서 사 먹으려니 한가득 나오는 음식과 싸우듯이 먹을 생각에 미리 피곤하다. 무엇보다 두 다리 쭉 뻗고 '내 침대'에 편히 앉고 싶다는 것에는 두 사람 공히 동의가 된다.

근처 가게에서 간단한 음식을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는 것으로 결정.

골목 안에 있는 작은 가게, '카페 앤 바'라고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곳에 들어가서 샌드위치 1인분을 테이크 아웃 주문하고 맥주 한 병과 에그타르트 두 개도 같이 샀다.

샌드위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석자리 의자에 앉아서 빈둥대고 있으니 아주 작은 벽걸이 티비가 보인다. 축구경기를 하고 있다.

갑자기 딸이 폰을 꺼내더니 어느 팀과 누구 팀의 축구경기 시간을 확인한다.

50대 엄마와 20대 딸은 참으로 제각각이다.

나는 '한일전' 정도의 대적성이 뚜렷해야 축구경기를 볼까 말까 한 반면, 딸은 새벽에 유럽축구를 보느라 눈이 퀭해서 출근하기 일쑤다.

이렇게 노는 것, 먹는 것, 취미생활까지 사사건건 다른데 같이 여행을 와서 하루 온종일을 붙어있으니 용하다.


나는 짭짤한 보와 구순한 누룽지,

딸은 속재료 미상의 샌드위치와 에그타르트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맥주 한 잔씩 마시면서 리스본의 첫날을 무사히 빡세게 잘 보낸 것을 자축했다.

그리고 시차적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곯아떨어졌다.


<리스본 1일 차 일정>


리스본 공항도착 - 우버 타고 호텔로 - 호시우 광장근처 점심식사 - 아우구스타 거리 - 코메르시우 광장 -

베르트란트 서점 - 카페 아 브라질레이라에서 카페인과 당충전 - 카르무 수도원( 시간관계상 입장불가 )-

알칸타라 전망대 - 글로리아 푸니쿨라 탑승 - 카페에서 샌드위치 테이크어웨이 - 저녁 먹고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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