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의 해물밥
연세 80이 훌쩍 넘은 친정엄마는 '사람은 밥벌레'라고 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빵이며 면은 다 주전부리고 오로지 밥이 음식이며 약이라는 지론을 갖고 사신다.
영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뭘 많이 먹지 않는 나조차도 하루 최소 두 끼는 밥이 들어가야 속도 편하고 기운도 난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포르투갈 여행 중에 한식은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봉굿하게 퍼 놓은 공깃밥은 구경도 못했다.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온 후 평소 다니던 헬스장에서 인바디 측정을 했던 딸. 그렇게 운동을 해도 늘지 않던 근육이 늘고 줄지 않던 체지방이 확 줄었다고.
나타를 어마무시하게 먹어치운 20대의 딸은 근육이 늘고 체지방이 줄어들면서 이른바 건강한 몸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엄청나게 걸어 다닌 덕분이기도 하고 해물이 주요 식재료인 포르투갈 음식 덕도 본 듯하다.
평소 섭생이 밥벌레 그 자체인 나도 딱히 밥을 비롯한 한식이 그립거나 당기지가 않았는데, 아마 이곳 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에 꽤 잘 맞은 때문이 아닌가 싶다.
LX팩토리의 '느리게 읽기'서점 창가에 졸듯이 앉아서 이후 일정을 생각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지만 나타로 열량을 채운 터라 당장은 뭘 먹고 싶지가 않은 상태.
이후 동선의 바운더리 안에서 맛집을 찾아보던 딸이 '우마'라는 식당을 추천했다.
해물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해물밥이라, 말 그대로 해물과 밥.
예상 가능한 맛이며 조합이 나쁘지 않다.
버스를 타고 아우구스타 거리로 이동했다.
역시나 버스 안내방송이 없어서 손가락을 구부려 정류장 수를 헤아리며 내렸는데 어디서 손가락 하나를 덜 구부렸나 보다. 한 정거장 더 지나서 내렸다. 다행히 어제 하루 종일 다닌 곳이라 거리가 눈과 발에 익어서 걷기가 나쁘지 않다.
구글지도를 보며 식당을 찾느라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던 차, 골목 안에 '우마'표지판이 보인다. 가게 앞에 서있는 직원에게 자리가 있냐고 물으니 대뜸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기 바쁘게 메뉴판을 좌르륵 넘기더니 한 페이지를 보여준다.
어랍쇼, 한글 메뉴판이다.
메뉴판의 '해물밥'을 손으로 가리키며 1인분, 2인분, 마음대로 시킬 수 있다고, 정말 맛있다고 추천한다.
테이블이 촘촘히 붙어있는 아담한 식당 내부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2명 자리가 날 때까지 잠시 서있다가 들어갔는데, 바로 앞 테이블에 한국인 중년 부부가 식사 중이었다.
한국인 추천 맛집에 오면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
중년 부부는 식당 종업원에게 한국어로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가 발음도 쉽고 듣기도 좋다는 말과 함께.
애피타이저로 문어샐러드, 그리고 주식으로 해물밥을 시키고 와인 한 잔과 물 한병 주문.
열량 만땅인 나타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아서 도저히 밥을 먹기 힘들듯 하여 해물밥 1인분에 애피타이저 하나 시켜도 되냐고 물어보니 된다고 했다.
문어 샐러드가 나오고 한참 뒤에 해물밥이 나왔다. 주문과 함께 조리를 하나보다.
문어 샐러드는 새콤한 소스가 들어간 문어맛이다. 맛이 엄청 좋다기보다는 새콤 향긋 신선한 맛, 애피타이저 맛이기도 하며 밥반찬으로도 어울리는 맛이다. 양도 꽤 많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나온 해물밥.
커다란 냄비째 나온 보글거리는 해물밥을 보고 놀랐다.
무슨 1인분이 이렇게 큼직한 냄비에 나오나 싶어 놀라고, 냄비 안에 가득 들어있는 엄청난 해물에 또 놀랐다.
새우, 게, 랍스터, 그리고 온갖 종류의 조개류가 그득하다.
게와 랍스터를 부숴먹을 수 있는 집게도 주는데 굳이 힘들여 부숴서 안에 들어있는 것을 수고스럽게 꺼내 먹을 필요가 없다. 그냥 보이는 것만 먹어도 먹을 것이 너무 많았으므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맛!
지금도 생각나는 해물밥의 맛.
뭐라고 할까, 맵지 않은 해물탕 맛인데 해물탕 보다 훨씬 감칠맛이 난다.
잔뜩 들어있는 해물들이 내는 자연스런 감칠맛에 걸쭉한 국물과 함께 먹는 밥알은 부드럽다.
맵찔이인 딸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찌개나 국을 잘 못 먹는다. 당연히 한국의 해물탕은 평소 입에도 못 대는데, 포르투갈의 해물밥은 맵지 않은 해물탕이니 완전 취향저격이다.
맛도 좋지만 보양식으로 먹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1인분 양이 너무 많아서 둘이서 나눠 먹어도 충분하다.
밥알과 국물까지 닥닥 남김없이 먹었다.
여행 와서 배를 곯지는 않았는데 뜨끈한 해물밥을 먹고 나니 뭔가 골을 메운 듯 원기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와인까지 남김없이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카드 결제기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계산서가 담긴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현금 결제를 원하나 보다.
지폐를 접시에 얹어서 건네주니 거스럼 돈과 방향제 티슈를 접시 위에 담아서 가져다준다.
리스본 특유의 방향제 티슈만 집어 들고 거스름돈은 팁으로 남겼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몸보신하듯이 양껏 먹을 때는 기꺼이 팁을 주고 싶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 다음날 점심때 우리는 또 이 가게에 와서 해물밥 2인분과 와인을 먹었다.
심신이 피곤해서 음식의 위로가 필요하던 차,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해물밥이었다.
다른 해물밥 가게를 찾아갈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포르투에서도 소문난 맛집의 해물밥을 먹어보았다만 리스본의 해물밥과는 맛도 다르고 양도 달랐다.
우리 입맛에는 리스본 우마의 해물밥이 넘사벽의 맛인 듯하다. 혹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양념을 조금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가 싶기도.
한국에서 포르투갈의 해물밥을 판매하면 대박일 듯하다. 왜 안 하지? 궁금하기도.
1인분에 18유로 채 안 되는, 즉 우리 돈 27,000원쯤에 이 정도 퀄리티면 꽤 괜찮지 않나.
'우마 한국 지점??'을 생각하다가 얼른 망상의 나래를 접었다. 우리나라 해물 가격을 감안했을 때, 포르투갈식 해물밥을 만들려면 해물밥 한 그릇 가격이 엄청날 듯싶다.
일용할 양식인 대중적인 음식을 망고 빙수처럼 팔 수는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