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완벽한 계획보다, 작은 시도 하나

하루에 만원을 벌어도 일단, 도전!

by B의취향

퇴사 후에 버티고, 정리하고, 회복하는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이제 본게임이 시작됩니다. 생계유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돌처럼 묵직하게 다가오죠.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반복됩니다. 사실 이 생각의 바탕은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입니다. 자연스럽게 조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금방 후회할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창업, SNS의 온갖 돈을 벌 수 있다는 강의 수강, 자격증 도전을 위한 강의 수강 등 여러 찔러보기에 갈팡질팡 흔들립니다. 복잡한 생각을 피해 SNS로 도망가면, 그 안에는 하루에 천만 원은 훌쩍 넘게 벌고, 시간은 2-3시간만 쓰며, 시작한 지 한두 달 안에 확실하게 성공이 가능하다는 말들이 넘쳐나니까요. 그렇지만 그들의 성공 공식이 나의 성공 공식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쉬운 일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할 일을 찾아야 한다거나 당장 통장에 수입이 들어와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섣불리 완벽한 방향이라고 믿어 버리는 결정들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불안을 당장 없애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 쫓겨 급하게 내린 선택들은 더 큰 후회와 불안을 들고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불안을 없애기보다 관리해 보자라고 생각하면 조금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나의 다음 스텝에 대한 원칙을 스스로 정리해야 합니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우리를 유혹할 광고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의 원칙, 그에 따른 결정' 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3가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나. 하루에 만 원만 벌어도 괜찮다.

직장을 다닐 때 시급을 생각하면 참 난감한 금액입니다. 그래도 옛말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고, 땅을 파도 100원이 나오지 않는 세상에서 만원이면 기특하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벌어야 하는 혹은 벌 수 있는 돈의 크기를 낮추니 생각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변했습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듯 만능 AI와 함께라면 초고수익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도보 배달로 3만보를 걸으면 만원은 벌 수 있을까? 커피숍 알바로 하루 3-4시간만 일해볼까?' 같은 가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행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둘, 무리하지 않는다.

무리하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무리하다의 범위를 정했습니다. 하루에 돈과 관련된 시간을 4시간 이상 쓰지 않고, 내가 별다른 노력 없이 바로 할 수 있을 정도의 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근앱의 알바탭을 많이 들여다봤습니다. 짧고, 대체적으로 육체만 활용하면 되는 일들이 올라오기 때문이죠.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준을 정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이긴 합니다. 나의 용기와 별개로 일단 육체노동의 경험이 전무한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을 잘 선택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셋. 기대 수익의 10% 이상을 시작하는데 쓰지 않는다.

일을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지 돈 놓고 돈 만들기의 도박은 아니라고 생각해 큰돈을 투자하거나 사용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은 제외했습니다. 이때도 큰돈의 기준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기대되는 수익의 10% 미만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만원을 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천 원만 쓰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죠. 시급이 만원인데, 그곳에 가기 위해 왕복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면 제 기준에서는 탈락인 셈입니다. 이렇게 기준을 잡으니 조급함 때문에 무작정 하겠다고 외치는 일이 줄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제가 시도했던 것은 유치원 통근 버스 동행자였습니다. 아이들이 버스에 타고 집에서 원까지 이동하는 길을 함께 하며 안전하게 버스에서 내릴 수 있게 돕는 역할입니다. 하루 4시간 미만(등하교 때만 하면 된다), 무리하지 않는 일(버스에 앉았다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집에서 도보 10분 거리 유치원이라 돈이 들지 않는다)라는 3개 원칙 모두를 충족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아주 적은 금액을 벌겠지만 일단 시도 하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죠.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하겠다고 선택하는 것과 실제 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틈이 존재합니다. 이것도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온라인 면접을 봤지만 똑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떨어지면 그 사실만으로 또 다른 타격이 될 수도 있으니 그 지점에서의 주의도 필요합니다. 저는 낯선 일이니 선택받지 못해도 그럴만하다 싶은 마음이 들어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새로운 활동을 시도했다는 것이 더 강한 긍정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다음 시도로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수익과 연관은 없지만 어찌 되었든 '시도'인 동시에 나를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니 무형의 수익을 얻고 있는 셈입니다. 적어도 무기력한 것보다 나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수익이 적더라도 나에게 가치 있는, 재미있는, 유쾌한, 또 하고 싶은 등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 내가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퇴사는 마치 방학 같은 느낌입니다. 유한하고(영원히 백수로 지낼 수는 없으니까요!), 숙제가 있고(나 이해하기, 나 위로하기, 나 찾기 등등 나와 관련된 숙제 100개가 기다리는 느낌이죠!),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방학 때 다들 집에서 뒹굴거리지 않았나요?) 상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음 학기 성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퇴사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죠. 그러니 일단 뭐든 시도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험을 키우면 뭐라도 느끼는 것이 있을 테니까요.

목요일 연재
이전 09화8화. 감정노트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