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감정노트 작성하기

'나'라는 세계의 공략법을 찾는 시간

by B의취향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긍정적이기만 하지 않다. 시간에 쫓기듯 일을 할 때는 간절했던 여유 시간이었는데, 막상 여유가 생기면 마음이 쫓긴다. 여유만큼의 불안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 중년의 여유는 두려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두려움, 다시는 사회의 일원이 되기 어려울 것 같은 두려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은 두려움 등등. 어디서 끌어 왔는지 모를 어둠의 감정들이 여유의 틈을 꽉꽉 채운다. 이때 손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날려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SNS를 여는 순간 또 다른 감정이 휘몰아친다. 뻔히 안다. 저 한 장의 사진 뒤에 있는 삶은 나와 같다고, 저 영상 뒤에는 또 다른 모습의 삶이 있다고.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더 나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부족을 찾게 된다. 비교를 하고, 자책을 한다. 이런 감정을 끊는 것 역시 인지, 인정,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___________________ 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 이유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이다.

하지만 나 역시 지금, _____________________을 _________________ 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렇게 감정을 인지하고, 이유를 인정하는 문장을 적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다음 나의 현재와 지금의 시간을 이해하는 문장을 덧붙였다. 나의 하루 역시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는 시간이었다.


감정을 회복시키는 작은 습관


이때부터 하루의 마지막에 감정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1. 오늘 나는 무엇을 버텨냈는가?

2. 오늘 나는 무엇에 감사했는가?

3. 내일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이렇게 3개의 질문에 각각 한 문장으로 답을 적었다. 오늘의 나를 칭찬하고, 내일의 나를 응원하는 짧은 시간을 만들었다. 누가 해주는 말보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의 힘이 세다. 다른 사람 100명의 칭찬보다 내가 나에게 하는 칭찬 한 마디가 강력하다. 항상 느끼지만 결국 나의 삶은 내 몫이다. 위로도, 응원도, 내 몫이다. 그래서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루의 감정 정리 다음은 생각 정리이다. 퇴사자들이라면 대부분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지금이라도 다시 취업해야 하나?' VS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좀 쉬면서 방향을 잡아보자, 내 걸 해보자'. 사실 답은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이 무한 반복되면서 답은 없이 머리만 복잡한 일상이 이어진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나를 다잡는 문장이 필요하다.


매일 읽는 책 속에서 그날의 문장을 찾는 일이 많다. 최근에도 <내 작은 숲 속 오두막으로>에서 읽은 문장을 생각 정리 문장으로 적어 두었다.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면 터널 안의 시간도 견딜 만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 문장을 보면서 나의 터널 끝에 있을 빛을 생각한다. 모든 터널에는 끝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렇게 흔들리는 생각을 다독일 오늘의 문장 혹은 이주의 문장을 하나씩 수집해 보면 내 마음의 방향을 알게 되기도 한다. 무의식 중에 수집한 문장들을 모으면 결국 내가 원하는 길과 관련되어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감정을 데이터로 만드는 시간


30일간 꾸준히 감정노트를 적다 보면 감정의 패턴이 보인다. 불안이 언제 심해지는지, 어떤 요일 또는 시간대에 감정이 흔들리는지, 나를 진정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을 데이터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마치 연구자가 되어 나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객관적 시간으로 나를 살펴보면 평생의 난제인 '나는 누구인가'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퇴사 후의 시간은 결국 '나'라는 더 넓은 세계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일을 지우고, 조직을 지우고, 관계도 일부 지우고 남은 '나'의 세계를 새롭게 만들고, 이해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한 번은 꼭 필요하다. 누군가는 20대에, 누군가는 30대에 겪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40대에 겪기도 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겪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고정되지 않고 꾸준히 변화하는 세계이니 말이다. 다만 한번 방법을 알고 나면 그다음에는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 퇴사가 '나'라는 세계의 공략법을 체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 준다고 생각해 보자.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준비의 시간이니 말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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