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어제가 불러온 오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민지는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하얀 벽지, 깔끔한 책상, 그리고 창가에 놓인 화분. 모든 것이 익숙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금요일 저녁,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러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후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었다.
"으으..."
그때 느껴지는 묵직한 두통. 민지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과음한 모양이었다.
"물이라도 마셔야겠어."
천천히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거실을 지나는 순간,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화분이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야자수였다.
"이게 뭐야? 내가 언제 이런 걸 샀다고?"
민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야자수를 바라보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야자수 옆에는 작은 쪽지가 놓여있었다. 민지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민지야, 네가 원하던 거야. 잘 키워.'
"뭐...? 내가 이걸 원했다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쪽지를 읽어보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김부장'이라고 떠 있었다.
"여보세요?"
"민지 씨! 어제 고마웠어요. 덕분에 정말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네...? 아, 네..."
민지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말이에요. 민지 씨가 어제 말씀하신 그 아이디어 말입니다. 정말 획기적이더라고요!"
"제가요...? 어떤 아이디어였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농담하시는 거예요? 어제 그렇게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더니..."
민지는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 네... 그게... 제가 좀 기억이 안 나서요."
"에이, 괜찮아요. 어제 늦게까지 열심히 설명해주셨는데 피곤하셨나 보네요. 오늘 오후에 회의 있으니까 그때 다시 설명해주세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민지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온통 물음표뿐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동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민지야, 어제 정말 대단했어!"
"네 아이디어 덕분에 우리 팀이 살았다고!"
모두가 민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민지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저기... 혹시 어제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동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술이 덜 깼나 보네. 괜찮아, 회의 때 다시 설명해줘."
점심시간, 민지는 혼자 카페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걸까?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민지야!"
고개를 들어보니 대학 동창인 수진이 서 있었다.
"어, 수진아. 오랜만이다."
"그러게. 근데 너 어제 왜 그랬어?"
민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 너랑 만났어?"
수진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농담하는 거지? 우리 어제 저녁에 만났잖아. 네가 술 마시고 울면서 내 어깨에 기대서 한참을 하소연했다고."
민지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미안해. 나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수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민지를 바라보았다.
"너 괜찮아? 어제 엄청 스트레스 받은 것 같더라. 무슨 일 있어?"
민지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모르겠어. 어제부터 이상한 일들만 생기고 있어."
그때 갑자기 민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엄마'였다.
"여보세요, 엄마."
"민지야, 어제 전화해줘서 고마워. 네 말대로 해볼게."
"네...? 제가 무슨 말을 했나요?"
"에이, 또 농담하는구나. 어제 밤늦게 전화해서 한참을 얘기했잖아. 네가 추천해준 대로 요가 클래스에 등록했어."
민지는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민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상해..."
시간이 흘러 드디어 오후 회의 시간. 민지는 긴장된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민지에게 집중됐다.
"자, 민지 씨. 어제 말씀하신 그 혁신적인 아이디어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시겠어요?"
김부장의 말에 민지는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지는 자신도 모르게 술술 말을 이어갔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열기로 가득 찼다. 모두가 민지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냈다.
"정말 대단해요, 민지 씨! 이 아이디어로 우리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부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정작 민지는 어리둥절했다. 방금 자신이 한 말들이 어디서 나온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퇴근 시간. 민지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거실 한가운데 놓인 야자수가 눈에 들어왔다. 민지는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넌 대체 어디서 온 거니...?"
그때 갑자기 야자수의 잎사귀 사이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민지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이게 뭐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 빛나는 물체를 꺼냈다. 그것은 작은 USB였다.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에 USB를 연결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어제 밤의 영상이었다.
영상 속 민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상하게 또렷했다.
"나는... 미래에서 왔어."
영상 속 민지가 말했다.
"내일의 나에게. 넌 지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네가 오늘 한 모든 일들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거야."
민지는 충격에 빠져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넌 오늘 하루 동안 우리의 인생을 바꿀 중요한 결정들을 했어. 회사에서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엄마의 건강을 위한 제안, 그리고... 이 야자수."
영상 속 민지는 미소 지었다.
"이 야자수는 우리의 꿈을 상징해.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이 나무처럼, 우리도 조금씩 성장해 나갈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영상이 끝나고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민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미래의 나...?"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이상한 희망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민지는 천천히 일어나 야자수 앞으로 걸어갔다. 손으로 부드럽게 잎사귀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그래... 함께 자라나보자."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붉은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민지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비록 어제의 기억은 없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생에 예기치 못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과음을 해서 가끔 필름이 끊긴 적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과음 후 기억 상실'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특별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얼마나 중요한 순간들을 지나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