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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Apr 12. 2021

<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

언젠가 쓰게 되어 있던 당신과 나를 위해서


 “ 많이 읽는 사람은 언젠가 쓰게 되어 있어 ”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의 책에 나오는 말이다. 전혀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채로, 많은 책을 읽는 한 여자가 나온다. 그녀에게, 시어머니인 시선(시선은 세상과 사람을 읽는 안목이 남다른 사람이다)은 마치 주문(呪文)처럼 예언한다. 언젠가는, 쓰게 되어 있다고. 저 소설에는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명언이 나오는데, 읽을 때는 다른 캐릭터나 스토리에 좀 더 몰입하거나 감탄하였지만, 신비하게도 저 대 사만이 책을 읽은 몇 달 뒤까지도 두고두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대체 몇 년을 미친 듯이 읽기만 하였던가. 나도 언젠가는 쓰게 되는 것일까. 그 언제는 역시 은퇴 후이겠지? 그런데 왜 자꾸만 생각나지?


 그 이유를 나는 어느 날 내 가슴에서 찾았다.



“ 나도 언젠가 쓰고 싶은 가봐.


                     아니, 지금-  쓰고 싶어. ”




 브런치라는 매체에 매일 올라오는 많은 글들. 나는 여러 들을 탐색하며 글 속에 ‘사람’을 살핀다. 글 자체를 즐기며 읽다가도, 문득 이 사람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은 이 글로 삶에서 무엇을 얻어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에 빠지기 일쑤였다.



  나는 왜 쓰고 싶을까?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은 무엇일까?



 내가 제일 많은 글을 썼을 때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던 중,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때의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글을 썼다. 하나는 나 자신을 알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다양한 방법으로 나 자신을 정리하는데 몰두했다. 나의 장점과 단점, 영어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나의 특성 찾기, 백문백답에서 영감 얻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나와 친구의 같고 다른 점 쓰기. 내 인생에 있었던 인상 깊은 일 쓰기.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 정리하기. 등등. 그 모든 쓰기 들은 수백 번 반복된 뒤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만하면, 그 당시의 나와 세상을 감히 꽤나 알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은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살았다. 그때 내가 남겨 놓은 글들은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말을 남길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신화와 보아, SM계 아이돌들을 아주 많이 사랑했었다. 인터넷에 팬픽을 연재하기도 하고, 전국에 있는 수많은 팬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말이 많고 글도 술술 써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 얼마나 많은 나무의 정제물(=종이)들을 까맣게 더럽혔나 모르겠다. 그리고 또한 같은 것을 좋아하는 멋진 사람들을, 글쓰기를 통해 많이 얻었다. 그때 알게 된 사람은, 인생의 한 시기 머물고 떠나갔더라도, 여전히 나의 뮤즈이고 영감이고 힘이다.




 그럼, 지금은 왜 쓰고 싶을까?



 글쓰기를 하니 하루 한 번, 찐-하게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감각이 인다. 사실 지금은 학생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시간이 모자라다.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밥을 만들고 먹고 하는 것이, 모두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것임에 틀림없음을 안다. 그런데도 진정으로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이따금 들었다. 맞추어야 하는 예쁜 ‘유리가면’을 위한 행동들이라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었다. 그 모든 행위들은 돈으로 바뀌고, 건강으로 바뀌고, 가시적으로 성취를 보이고, 나와 가족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발전’으로 이끈다. 물론 그것도 좋다. 그런데, 뭔가 모자랐다. 그래서 당분간 일단 써보기로 한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좋고, 나다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또 ‘나’에 대한 재정립과 재인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대학생 이후로 얼마나 내가 많이 변했는지. 나는 의도치 않게 아주 많은 사건들을 겪었다. ‘평범’을 벗어나는 일들을 향해 매번 달려가는 목마른 나의 성미 탓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이 아주 많은 행복한 성미 덕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정받고 싶고, 최소한 내가 느끼는 나 그대로를 그 사람들이 인지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최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그동안 미뤄두었던 내 안의 감정이나 나의 모습을 글을 통해 발견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도, 막상 쓰려니 별 쓸 말이 없는 놀라운 경우가 있었다.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그다지 관심 없다고 생각한 것도, 쓰기 시작하니 다양한 시선이 끝도 없이 흘러나와서 내 안의 다른 내가 많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것은 글쓰기의 기쁨일 것이다.



 글쓰기의 슬픔은, 모자란 나를 발견하는 일이 가장 크다. 평생을 평균보다는 논리적인 편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해 왔는데, 요즘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가 너무 우습다. 며칠 뒤 글을 보면, 주술 구조가 안 맞는 문장 투성이이고, 남다른 표현은 왜 이렇게 없고, 맞춤법 검사를 하면 틀린 단어는 왜 이리 많은가. 글을 쓰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아주 당연지사이다. 한 주제에 대해서 정리해서 말하는 능력이 이다지도 모자란 사람이었다니.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이라 착각했던 나는 앙상히 드러난 내 모자란 뼈대를 보며, 처음에는 울었고, 한없이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브런치를 개설하고도 작가의 서랍에 글들을 숨겼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숨기고만 있으면 바뀌는 일이 없다. 모자란 나의 민낯을 공개하고 매를 앞서 맞을수록, 나는 빠르게 성장하리라 믿는다. 성장이란 단어를 즐겨 쓰고 마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내가 우습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적어도 나 스스로가 나를 더 좋아하는 길로 가리라 믿는 것이다. 내가 뱉는 말들, 내가 쓰는 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를 조금씩 치유하리라 믿는다. 그 길에, 같이 치유될 누군가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그리고 사람과의 소통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 없을지 모를 좋아요 하나, 댓글 하나에도 정말이지 기분이 좋다. 댓글을 단 사람은, 일단 글을 조금 더 관심 있게 읽었단 사실 하나만으로 엄청 호감이 가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눌 자세가 되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견딜 수 없이 좋다. 주소가 공개되는 세상이라면, 몰래 달콤한 간식 바구니라도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하. 브런치에 글을 올렸더니, 세상이 나에게도 소통하고 숨 쉴 기회를 조금 더 주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더니, 내가 지금껏 부끄럽거나 기회가 없어서 드러내지 못한 마음이 정말로 전달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 마음 그대로를 썼을 뿐인데, 감동이라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울컥-.



 어려운 것은 쓰다가 자꾸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자신이다. 얼마 전 심리테스트를 했는데, “당신은 남을 웃기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항목이 있었다. 열심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는데, 나는 결국 yes를 눌렀다. 그리고 최근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가장 기분 좋았던 때는, 어제이다. 친구들이 앞에서 내 글을 읽으며 킥킥- 쿡쿡- 거릴 때였다. 내가 웃으라고 재기 발랄하게 넣은 부분에, 빵빵 터져주니까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뭐라고? 최근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희열이었다. 나란 인간은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해서 남들이 기뻐하는 순간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요리도 좋아하고, 데이트할 때 루트 다 검색해 놓는 것도 좋아하고, 모임에서 이벤트로 하는 미션에서도 혼자 열정적으로 열을 올리는 미션 변태인가 보다. 그리고 지금 - 당신을 향해 글을 쓰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세상이 진지하고 힘든 때가 많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속에서 순간의 유쾌함을 찾고 싶다. 유쾌함과 발랄함이 아직도 많이 당신과 내 속 안에 남아있음을 알고, 함께 웃고 싶다. 천성에 우울함과 섬세함이 깔린 인간이라서인지, 더욱 많이 꺄르륵- 거리는 순간을 찾아서 두 손 가득 쥐고 싶다.


 못 쓰는 글일지라도, ‘당신을 웃게 하고 싶다’ ‘당신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라는 마음만큼은 무엇보다 담뿍- 듬뿍- 가득가득- 하니, 조금 더 제 글을 읽어봐 주시겠습니까요? 하고 매우 급하고 요상한 말투로 부탁을 해 본다.



 

 

 오늘 친구가 재밌는 인터넷 썰을 알려주었는데, 이런 것이다.


연인에게 카톡으로 점을 찍어 보낸다. 상대방은 “이게 뭐야?”라고 반응한다.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내가, 지금부터 너, 점찍었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점- 찍겠습니다. 으하하하.


좀 뻔뻔한 성격은, 아무래도 타고났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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