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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Oct 24. 2021

보라보라 일기

보라를 빌려 쓰는 요즘 생각들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색을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늘 보라를 꼽았었다. 보라가 가진 신비로운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이 많이 꼽지 않는 색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끌렸었다. 보라는 어느 날 보면 무서웠지만, 어느 날 보면 다정하고 매력적인 신비로움이 있어있었다. 마녀같이 냉철한 차가움도 보였지만 동시에 독약일지라도 탐하고 맛보고 싶은 탐스러움이 있었다. 조금 더 커서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보라가 된 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순간 내가 받은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열과 평안과 고독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남다름과 우아함, 화려함- 혹은 다정함과 거부감이 보라에는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눈앞에는 보라색 라벤더가 흔들리고 있다. 영월 일주일 살기를 하는 동안 우연한 기회로 라벤더 밭에서 데려온 아이이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길게 자랐던 보라 꽃잎이 점점 떨어져 가고 있지만 특유의 시원하고 상쾌한 향은 여전하다. 특별한 관리 없이도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고, 겨울에도 뿌리는 계속 살아 있어서 죽은 것 같아도 다음 해에 스스로 알아서 다시 꽃을 피운다는 라벤더. 사람이 그러하듯 성격과 특징을 자세히 알고 자꾸 보니 더욱 사랑스럽다. 화장실에 두면 냄새 제거에도 좋다고 해서 화분에 심어 화장실에 하나, 거실에 하나 놓아본다. 보라는 화려하고 유혹적이면서도 지지 않는 강인함이 느껴지는 색인데, 보라색 라벤더도 딱 그 용맹함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라벤더를 볼 때마다 내 안의 매력적인 강인함을 키워야지, 하고 여러 번 다짐을 해 본다.


 가을은 보라와 어울리는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코스모스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시월 하늘을 가로지르는 에어쇼의 보라색 구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알듯 하면서도 잘 모르겠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골몰해볼 때, 나는 보라 보라 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요즘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어휘를 정성껏 고르고 골라 마음을 담아내는 일에 점점 더 매료되고 있는 것 같다. 시를 함께 읽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고, 시 창작을 하는 도서관 모임에도 지원했다.


 가을 속에 있는데 가는 가을이 아쉽다. 해가 갈수록 가을의 평온함과 높은 하늘에 감격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가을이 짧게 느껴지곤 한다. 노트북을 이고 지고 나가서 시원한 카페에 앉아 한 두 시간 키보드를 타닥 거리는 것도 좋기야 했지만, 그런 푸르던 여름이 갔다. 요즘은 바람이 차가워졌어도 높은 하늘을 보며 공원에 누워 있고 싶은 계절이다. 그래서 노트와 펜 하나를 달랑 들고 돗자리와 함께 따뜻한 시간에 나간다. 집 앞 공원이고 정자고, 아무 데나 발랑 누워서 시를 썼다. 쓰다 보니까 시가 점점 더 좋아진다. 시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니, 금세 썼을 거라 생각했던 그와 그녀들의 시에 얼마나 많은 마음과 고뇌와 환희가 담겼는지를 조금이나마 더 가늠해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는 멋진 시를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쓰고 싶어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보라색 표지의 시집들을 들어본다.






 <좋은 곳에 갈 거예요>라는 시집을 이번 영월 여행 내내 들고 다녔었다. 시집과 함께 마음을 많이 다듬어서인지 나는 영월에 다녀와서 금세 브런치 북을 발간할 수 있었다. 다 시집 덕이다. 라디오 디제이들이 방송 말미에 하는 주문 같은 긍정적인 멘트들을 아주 사랑하는데, 이 문장도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래서 더욱 부적처럼 책을 들고 다녔다. 들고 다니면서 아주 잠깐의 짬이 날 때마다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시는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바가 다른 것도 이해되는 정도가 다른 것도 큰 매력인 것 같다.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연거푸 되뇌다 보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좋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신기하게 차올랐다. 시집의 서문에는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오래오래 들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나도 그런 말을 하는 이를 보내본 적이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오래오래 듣고 오래오래 새겼던 나날이었었다. 책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좋은 곳을 가고 싶어서 노력을 하고, 또는 좋은 곳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음 생에라도 모두가 좋은 곳을 향해 갈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과 선의를 오늘만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는 책은 이원하 작가님의 시집인데, 사실 나는 작년에 이 책을 만나고서부터 고등학교 이후로 오랜만에 시집에 빠졌던 것 같았다. 이 책은 진한 보라가 아니고 연보라색 표지를 지니고 있는데, 어쩜 부드럽고 야들야들하고 달콤하면서도 좀 야한 시인님의 시를 물감으로 녹여낸 듯한 색감이다. 짝사랑을 하느라 애달픈 화자이지만 눈치를 보는 듯하면서도 어쩐지 매력적인 자존감으로 가득한 그녀의 시어, 시상들이 모두 놀라웠다. 그녀의 표현대로 정체가 끝이 없고 탐스러운 수국의 즙 같은 말투였다. 시란 신기하다. 나는 수국의 즙이 무슨 맛인지 먹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 느낌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그녀는 또한 시에서 코스모스가 회복을 위해서 손을 터는 가을이라는 표현을 한다.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휘둘리며 사는 삶에는 애초에 비스듬히 서 있는 게 약이라며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녀가 자연에서 사랑과 외로움, 자아를 발견하는 게 참 좋았다.






 얼마 전에는 한강공원에 갔었다. 하늘을 한 번 보고 한 단어를 새기고, 캠핑 장비를 가져와 꺅꺅 거리며 와인을 나눠 마시는 친구들을 보며 시구를 마음에 떠올렸다.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외롭고 꿋꿋한 낚시꾼들을 보면서도 아련하게 보라의 기운을 느낀다. 보라에 대한 시를 써보고 있다고 하니까, 옆에 있던 친구가 보라 하면 BTS 지!라고 팬심을 내비췄다. 나는 유명한 대표 노래들만 알 뿐, BTS에 대해서 잘은 모른다. 세상의 모든 핫한 것들에 대해서 다 알아볼 태세로 덤벼들었던 예전이지만, 요즘은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부러 남겨두는 삶이 더 기대가 된다. 삶이 지쳤을 때 재밌게 파 볼 무언가를 남겨두는 셈이다. 어쨌든 친구는 그들의 보라해! 의 의미는 서로를 믿고 끝까지 사랑한다는 예쁜 말이라고 알려주었다. 멤버 중 하나가 만들었다는데 그래서 인기가 많나 보다.


 보라에 대해서 쓰고 있자니 신안의 퍼플 섬도 떠오른다. 올 가을이 다 끝나버리기 전에 그곳에 다녀와야지. 그곳에서는 불안한 마음을 정화시켜준다는 보라의 효능을 마음으로 느끼고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나는 여전히 매주 글을 쓰고 있지만 내가 글을 사랑하는 만큼 나도 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글쓰기도 보라같은지도 모르겠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일은 바빠지면서 놓았던 브런치를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이제는 알겠다. 설령 글이 나를 싫어한대도, 나는 글을 쓰는 행위를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다. 글을 향한 보라보라의 마음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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