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답은 정해져 있잖아
<ver. 2023>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남의 선택에 쿨하고 싶어 하면서도 한 마디 보태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하는 성질이 있다. 최근에 내가 했던 선택 - 천문학 박사를 따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겠다는 말 -에 굉장히 많은 토가 달렸다. "왜 (하필)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서 "왜"는 궁금하다는 뜻이 아니라, "왜 내가 고른 선택지를 따르지 않는지"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한 귀로 감사하게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하고 싶은 대로 살자.
<ver. 2025>
할까 말까 고민될 때, 나는 하는 편이다.
고민이 된다는 건 '한다' 와 '만다'의 두 선택지가 동등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한다'는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일 것이다. '만다'는 옵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게 할 만큼.
하지만 '한다'에는 무언가 당신의 마음을 켕기게 하는 약간의 단점과 리스크가 존재한다. 비용이 문제라면 오히려 선택은 간단하다.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지 없는지 판별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의 문제일 때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얼마 전에 그런 적이 있다. 퇴사를 선언하기 직전이었다.
몸도 좋지 않았고, 일도 맞지 않았고, 월급날에도 딱히 즐겁지 않았다. 그 밖에도 회사 내 여러가지 사정이 얽혀 있었지만, 매일 밤 울면서 내일이 오지 않길 기도하는 것만해도 퇴사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퇴사를 선언하겠다고 막 마음을 먹었던 날, 어김없이 야근을 하던 나의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가 도착한다.
"청약에 당첨되셨습니다."
당연히 보이스 피싱을 예방하기 위해 링크가 첨부되어 있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청약 home 어플에서 내 당첨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사회초년생이었으므로 모아둔 돈도 없었고, 회사의 임직원 대출을 껴야 계약금을 낼 수 있을까 말까 했다. 앞으로 중도금과 잔금까지 납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므로, 청약 당첨을 수락하기 위해서는 퇴사를 포기해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청약은 과하게 높은 미달 지역으로, 매매가가 청약가보다 낮은 곳이었다. 물론 청약 당첨 기회를 날리는 것은 아쉬웠고, 어찌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으나, 투자로서도 퇴사를 향한 갈망에게도 좋은 기회는 아니었다고 본다. 청약 때문에 고민을 하는 일주일 동안 퇴사 일자가 그대로 일주일이 늦춰졌을 뿐이다.
기어코 퇴사를 선언했을 때, 옆 팀의 부장님이 그런 말을 했다. "자라 씨, 이대로 퇴사하면 안 돼요. 경력도 애매하게 끊기고, 다시 다른 회사 들어가기 힘들걸요."라거나, "부모님은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자식이 취업도 하고 사회생활 잘 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나에게 옆 팀으로 옮길 기회를 주겠다고 했고, 주말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 고마운 제안은 나를 고민의 수렁텅이에 빠뜨렸다.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 그런 자리, 그런 기회를 박차고 나가는게 "한다"의 선택지에 대한 부채감을 부여했다. 애써 티내지는 않아도 남몰래 한숨 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고, 점점 비어갈 통장 잔고도 "만다"에 무게 추를 더했다.
대학원을 그만둘 때는 어땠더라.
뭣도 모르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꿈꿔왔던 천문학자라는 꿈은 아이돌 무대 의상과 같았다. 억지로 몸을 꾸겨 넣을 순 있겠지만, 벗기 위해서는 가위로 잘라내야 하는 옷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공부를 잘했으나,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주 7일을 연구실에 나가고 밤을 세우며 발표 자료를 만들고 수업과 조교 업무를 챙기는 수많은 일의 산더미 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나는 '못한다'라는 상태의 지속이었다.
휴학을 하고 한 학기의 유예 기간을 갖는 동안 연구실은 주3일을 나갔다. 그러나 연구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주7일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3일은 연구에 대한 생각을, 나머지 주4일은 연구를 해야 되는데 하기 싫고 못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는 할까, 말까, 그 중간에 서서 6개월의 시간동안 고착상태에 빠져있었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한다, 만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2024년 2월,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퇴사를 앞둔 현실로 돌아와서.
결국 나는 최강의 치트키를 꺼내들었다. 바로 "내 마음!" 나는 퇴사하고 싶었고, 충동적인 결정도 아니었으며, 퇴사 이후의 일정과 재정계획도 이미 세워둔 후였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퇴사 할 것이라는 걸.
엄마는 나에게 "너는 너 하고싶은대로만 하고 살지."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 부채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내 인생인데, 내 맘대로 살아야지. 아무렴 뭐 어떤가.
할까 말까 할 때,
사실 당신도 알고 있다. 이미 답은 정해져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