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까..엄마 따라 시장을 갔던 늦여름 어느 날이었다. 콩나물을 사다말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시던 목소리 톤까지기억난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하다.
"시장에서는 물건 값 깎는 거 아니야. 혹시 더 주시는 건 감사하게 받으면 돼. 만약 깎으려고 하면 우리한테 덤을 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까지 깎는 거야. 그리고 안 깎으면 할머니가 알아서 좋은 걸로 골라주셔, 봐~ 그렇지?"
엄마의 말씀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어린 나는 콩나물값을 아끼면 맛있고 달콤한 요구르트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아줌마들은 잘 깎고 그러시던데 엄마는 왜그러실까... 나 요구르트 못먹게 하려고 그러시는 거야'하고 엄마의 셈법이 이해되지 않아서 못내 서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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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머니 앞에서 무안하게 '이해되지 않는 교훈'을 듣고 엄마가 콩나물 값을 치르려는 순간,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주름 가득한 손이 작은 내 손을 잡아끄셨다. 그리고는 그렇게 먹고 싶던 요구르트를 건네주셨다. 쪼그려 앉아 계시던 옆 자리 스티로폼 상자에서 꺼내 주신 할머니의 미지근한 요구르트.
엄마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스티로폼 상자는 나 때문에 여시면 안되는 보물상자(!)였다. 시장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가져온 콩나물을 다 팔때까지 버티시기 위해 간단한 끼니를 넣어두셨던 그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서 거짓말처럼 요구르트가 나왔다.
엄마뒤로 몸을 반쯤 숨기고 할머니와 요구르트를 빼꼼 거리며 번갈아보고 있을때 콩나물 할머니가 웃으시며 그러셨었다. . . "덤이야~" . . 그제야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말했다. 엄마는 할머니께 "아이고. 버릇되어요. 할머니께서 드셔야죠~" 하고 손사래 치셨다. 하지만이미 요구르트의 은박지 덮개를 열어서 작은 내 손에 쥐어주시고는 어서 먹으라고 하시던 할머니. 그쪼글쪼글해진 눈가가 애써 읏으시느라 더 쪼글거렸다. 할머니가 막무가내로 덥석 손을 잡으시며 요구르트를 쥐어주시던 손길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엄마는 내 등을 할머니 쪽으로 살짝 밀어 나를 팝업창처럼 앞으로 한 걸음 나가게 하셨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 해야지...아이고... 애가 수줍음이 많아서요.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사러 올게요. 많이 파세요"
그날 그렇게 수줍게, 못 이기는 척 요구르트를 받아 들고 오면서 어쩐 일인지 그 요구르트는 바로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마음까지 깎는 거야...".
@한국야쿠르트 홈페이지.
30년도 더 지난 오랜 그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오늘 운전하고 오는 길에 시장 팻말을 보며 불쑥 튀어나온 어린 시절 추억, 그리고 살면서 느끼는 진짜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