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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Aug 13. 2021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이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다.

찬란한, 찬란할 내일을 위하여

 계절의 변화는 오감 중 촉각이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절기상 말복도 지났구나 하는 것은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얼굴에 스치는 바람결에서 알 수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가고 있는 바람은 꽉 쥔 주먹의 힘을 풀었다.


 동안 멈췄었고, 바뀌었던 일상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다가도 이내 다시 멈추기를 반복한다.

여느 때와 다르게 지나가는 이번 여름이 못내 아쉬워서였을까. 8월이 되고도 열흘이 훌쩍 지난 오늘에서야 달력을 넘겼다.

버텨내는 시간들 때문일까,

달력 종이가 괜히 무겁게 느껴진다.


2021년 8월 달력@꽃구름


 달력을 넘기며 입 밖으로 천천히 소리 내 본다.


"ㅇㅗㄴㅡㄹ, [오늘]"


"ㄴㅐㅇㅣㄹ, [내일]"


시점을 표현하는 명사 세 단어,

'어제', '오늘', '내일'.


똑같이 공평하게 두 음절씩 나는 날들 중 유독 '어제'만 받침이 없는 것이 어쩐지 다르게 느껴지고 '오늘'과 '내일'은 음가의 울림이 조금 길게 느껴지는 'ㄹ' 받침 음가로 끝나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온다.


'어제'와 '오늘'은 우리말, '내일(來日)'은 한자어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고려 문헌 「계림유사」에는 내일을 뜻하는 ‘할재(轄載)’가 있었다고 한다.

 발음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 '하제, 올제, 후제' 등으로 다르게 추정하고 있지만 발음이 무엇이든 이미 옛말이 되어버려 낯설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세 낱말 중 '내일'을 뜻하는 우리말만 입말로 살아남지 못했을까 궁금해진다.
어쩌면 '내일'까지 굳이 생각할 틈도 없이 어제와 오늘을 열심히 버티고, 살아냈던 우리네 모습 때문은 아니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달라진 '오늘'들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오늘까지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이 이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이제는 오늘과 너무도 다른 내일이 올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두려운 예상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의 변수에 따라 매우 다른 날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는 어떤 '내일'을 만들어낼까.


마스크를 쓰는 일상, 숨 쉬는 것부터 달랐던 지난 시간들, 우리가 함께 참아낸 한숨들이 더 이상 탄식이 아니라
맘껏 내쉬는 온전한 호흡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버텨내는 지혜로운 '오늘'들이 간절해졌다.


간절함이 필요 없어진 '그때'가 온다면
잊힌 옛 표현보다 더 찬란한 '내일'을 뜻하는 말이 생길지도. 9월 달력을 넘길 때는 그 무게가 좀 가볍게 느껴졌으면... 꼭 그랬으면 좋겠다. .
.
.
#애쓰시는분들과 #의료진덕분에
#버텨내는_우리모두 #덕분에
#감사합니다

#생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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