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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Oct 25. 2021

스탠더드 한 하룻밤이란

스탠더드 한, 스탠더드를 위한

이사를 오고 난 후, 진짜 내 집이 생겼는데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호텔에 더 자주 묵는다. 호텔리어도 아니고, 호텔 회원권 더더욱 없다. 서울이 고향인 '서울러'이면서 최근 다시 '지방살이'를 시작한 '지방러'이기도 하다. 무려 12년을 주말부부로 지내며 매주 8할 이상을 기차로, 운전하며 다녔다. 주로 움직인 쪽은 신랑이 아나, 나였다. 현재의 거주지를 서울 아닌 곳으로 옮기고 보니, 다시 서울 출장을 가야 할 때면 일주일에 한 번씩 호텔을 예약한다. 늘 '8시간 동안 안전하게 잠자고 씻을 공간'의 기준으로 예약하기 때문에 늘 가장 낮은 등급의 혹은 저렴한 '스탠더드 트윈'을 선택한다. 혼자 쓰는데도 '트윈'을 고르는 것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나름 공간을 나눠 쓸 요량이기 때문이다. 트윈베드 중 하나는 진짜 침대로 사용하고, 하나는 편하게 짐을 늘어놓는 쇼윈도로 쓰기도 하고, 노트북 작업 책상으로 삼기도 하고, 가끔은 요가매트가 되기도 하며(양심상 운동을 하지만, 푹신해서 자세가 잘 무너진다.) TV를 켜고 치킨을 먹는 식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흘리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하는 매너는 갖췄다.) 스탠더드 룸을 예약하고, 몇몇 비슷한 3-4등급의 비즈니스호텔을 이용하다 보니 이 '스탠더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호텔에 짧게 머무르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얼마나 쓰지 않는 물건들을 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뼈 때리는 반성이 자동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참, 안 바뀌고 또 모바일로 뭔가 주문하는 걸 보면 사람 정말 안 바뀐다.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미니멀리스트인 남편과 자주 승강이를 한다. 하하.


 이사. 두 글자, 받침도 없이 가볍게 내뱉게 되는 이 단어를 2년에 한 번씩, 아니 그보다 더 자주 옮겨 다녔다. 부모님을 떠나 대학을 가면서, 맘이 맞을 것 같아 같이 살게 된 선배 언니가 여러모로 불편해서,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이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나오게 되고, 전세 계약기간 만료로 이사하고, 새로 들어간 전셋집에 주인집 아들이 들어와 산다고 일찍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다시 이사, 이직으로 출퇴근이 멀어져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느라 또 이사, 그럴싸한 복층 오피스텔은 남서향이라 상상 이상으로 너무 더워서 이사, 방이 3개 있는 집으로 드디어 옷과 책을 분리하던 집으로 옮겼으나 사회생활 후 10년 같이 살던 막내 동생을 분가시키고 적적해서 작은 집으로 다시 이사, 결혼 후 첫 번째 신혼집은 욕도 아까운 놈에게 당한 사기로 이사, 그래서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 사옥으로 이사, 첫 분양받은 집에서 귀신을 봐서 또 이사, 임시로 거주할 생각에 얻은 1층 집은 2층 주인집에서 밤마다 악기를 불어대서(휴...) 나오고, 다시 이사 간 상가주택에서는 아래층 사무실 소음이 너무 커서... 무슨 래퍼처럼 숨차게 읊어댄 이사 스토리에는 희노애락이 겹겹이 쌓여 있다. 버라이어티 스펙터클 다사다난한 이사 스토리만 말해도 내 20대와 30대를 한 땀 한 땀 이으면 줄넘기할 수 있을 만큼 길다.


드디어 내 집 마련. 온갖 소음과 풍파에 못 견딘 우리 부부는 무조건 아파트 탑층을 목표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잘 모르던 낯선 동네의 덜 알려진 아파트 탑층. 매물이 나오자마자 '진짜 드문 귀한 매물'이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 돌림노래처럼 계속될 때, 딱 2절까지 듣고 10분 만에 계약해버렸다. 내 집은 스텐더드 이상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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