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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Oct 25. 2021

나는 '의식주'일까, '주식의'일까,

'의식주'와 '주식의' 차이

한 때 먹방이 유행하고, TV든 유튜브든 먹는 것으로 온 세상이 다 가득 찬 것처럼 흘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뭔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여기저기서 온통 음식 천국 먹방 천국이었던 시절 사실 좀 괴로웠다. 좋아하는 커피와 빵 하나면 부러울 것 없이 한 끼를 무난하게 보내는 식탐이 다소 적은 나로서는 음식 이야기만 나오는 세상이 좀 어색했다. 각종 음식 앞에 앉아 과한 리액션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몹시 부담스러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조건으로 의, 식, 주를 따진다. 그중에 식(食)은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라면 주(宙)는 존엄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반지하에 사는 송강호 가족들과 반대의 조여정 가족, 그리고 지하에 사는 또 다른 가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람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인 세 가지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많이 달라 보인다. 우선순위 배치 기준에 따라 의식주, 의주식, 식의주, 식주의, 주의식, 주식의 까지 총 여섯 가지 조합이 나온다.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던 나는 굳이 꼽자면 의식주 순서였다. 주(宙)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밖으로 돌던 일들이 줄고, 우울함이든, 기쁨이든, 지루함이든, 유쾌함이든 모든 감정을 집에서만 녹여내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식의 로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올 가을에 산 간절기 트위드 재킷도 딱 한 번밖에 입고 나가지 못해 아쉽다.)


집에 맞추는 사람도 있고, 사람에 집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29번의 이사를 했던 프로 이사러다. 태어나서 부모님과 살면서 이사 다녔던 기억, 그리고 대학 때 자취하고, 사회생활하며 이사 다닐 수밖에 없었던 모든 횟수를 보니 스물아홉 번째에 드디어 내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 집을 결정하기까지 최단시간이었지만 지금은 나와 남편에게 집을 맞추고 있다. 예전처럼 집에 나를 맞추지 않으려 한다. 방 3, 화장실 2, 거실로 구성된 평범한 아파트의 우리 집은 거실은 서재 겸 나의 작업 공간으로, 대다수가 '안방'으로 부르는 방을 우리는 침실 전용방으로, 작은 방 하나는 남편 공간, 또 다른 작은 방은 옷방으로 쓰고 있다. 집에 머물다 보니 방 하나 가득 찬 옷방이 아까워 옷을 계속 버리고 정리하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이 집으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약속한 것이 있는데 복층 공간의 반은 내 글쓰기 전용 공간과 작은 서재로 쓰고 남편은 도시 농부처럼 가드닝을 할 수 있도록 옥상을 자유롭게 쓰기로 했다. 제한된 공간이지만 우리만의 공간에서 가구 배치도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여전히 실험 중이고 집과 친해지는 중이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외부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해도 지금의 기준 중 우선순위인 '집'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조금은 다른 의미의 우선순위이다. 이제 이사한 지 일 년, 사계절을 두루 겪었다. 사계절을 겪으며 이 집이 더 좋아졌다. 남들보다 부동산 시세에 다소 둔감하고, 투자에 소극적인 편이라 거주 공간으로서 애정을 듬뿍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남들 시선보다 집에 머무는 내게 우선순위를 둔 현재의 기준을 옮기지 않으려 한다. 집을 아끼고 즐기고 누리는 마음의 평수를 넓힐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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