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테호른 Jul 17. 2020

위로받기 겁내는 사람들을 향한 혜민 스님의 조언



◆ 지나친 경쟁이 만든 우리 시대의 자화상, ‘위로 포비아’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이, 내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참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절대 말하지 않고, 자식에게 손 내밀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내가 조금 더 힘들고 말지 자식까지 힘들게 할 수 없다’라는 마음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가가 형사 시리즈’의 주인공 가가 교이치로(加賀恭一郎)는 아버지와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병실을 단 한 번도 찾지 않을 정도다. 그 이유는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을 나간 어머니 때문으로, 그때부터 30여 년 동안 부자는 남남처럼 살았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조카가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그제야 가가는 아버지의 병실을 찾고, 사촌 동생에게 그 동안 아버지를 찾지 않은 이유를 말한다.  

그가 아버지와 남처럼 산 것은 아버지의 부탁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집을 떠난 아내가 겪었을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을 자신 역시 느낌으로써 뒤늦게나마 그것을 속죄하고 싶어 했다. 그 때문에 아들에게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한 것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그 이야기가 잊히지 않고 자주 떠오르는 이유는 그만큼 그 이야기가 지닌 의미가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가가 형사 시리즈’의 주인공 가가 교이치로는 아버지와 30여 년 동안 남남처럼 살았다. 사진 출처 ─ 영화 <기도의 막이 내릴 때>의 한 장면.



◆ 직장인 10명 중 9명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게 약점이 될까 봐’


사실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부모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젊은 사람들 역시 대부분 참는데 익숙하다. 그 원인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상대를 불신하는 데 있다. 힘들다고 말하면 그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속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털어놓지 않을뿐더러 위로받는 것 역시 두려워한다. 이를 ‘위로 포비아’라고 한다. ‘위로’와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가 합쳐진 신조어다.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직장인 273명에게 설문한 결과 ‘본인의 상황,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만, 머뭇거린 적이 있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88.5%에 달했다. 주변에 상황을 털어놓고 공감을 받는다는 답변은 18%에 머물렀다. 또한, ‘힘이 들 때 혼자 삭인다’라는 응답자도 전체의 61.3%였다. 쉽게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이유는 비슷했다.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호구가 될까 봐’, ‘그게 나중에 약점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서로 사정을 공감해줄 만한 시간적 감정적 여유가 없어서’, ‘내 말이 강요되거나 오해의 소지를 남길까 봐’ 등의 이유가 잇따랐다.”

─ <서울경제신문>, 2017년 11월 27일 기사 중에서


문제는 ‘위로 포비아’ 증상이 악화하면 행복지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깊은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존감 역시 크게 낮아진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위로 포비아’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못한 채 숨기며 사는 걸까.

대부분 사람이 직장에서는 선배와 동기, 어린 후배들과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지만, 힘들다고 티를 낼 수도, 아프다고 할 수도 없다. 약해 보이면 자신의 존재감이 흔들릴 수 있다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따뜻한 소통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달하는 혜민 스님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목놓아 펑펑 울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슬프면 좀 슬퍼해도 괜찮아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면 아프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힘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돼요. 저항하지 않고 ‘이래도 괜찮다, 괜찮다’라고 해주세요.”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중에서
▲ 따뜻한 소통으로 유명한 혜민 스님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 무조건 참는 것은 치유가 아닌 자아상실이자, 더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다


힘들다고 말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혹시라도 약해보일까 봐, 책임감이 없어 보일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대부분은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야만 한다고, 그것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기암시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러다 보니 아픔이나 상처가 극에 달해 있는 데도 그것을 말하지 못한 채 혼자서 속앓이만 하기 일쑤다. 하지만 말하지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혼자서 버티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어야 한다. 무조건 참는 것은 치유가 아닌 자아상실이자, 더 큰 비극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