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고뇌와 괴로움의 출발점, 투르게네프의 소설 《루딘》
윤동주의 〈툴계녭의 언덕〉이라는 시가 있다. 현재 우리는 그것을 〈투르게네프의 언덕〉으로 읽는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시로 시작해서 시로 문학 인생을 마무리했을 만큼 시를 사랑했다. 그 때문에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의 시, 그것도 산문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노년의 투르게네프가 뒤늦게 깨달은 삶의 가치와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20세기 초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만큼 많은 영감을 주었다.
윤동주 역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탐독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그의 산문시 중 가장 인기를 끈 <거지>를 오마주한 것이다.
… 거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을 내민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고는 “어르신, 죄송합니다. 지금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했다.
거지는 웃음을 띤 채 나를 쳐다보더니,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생님. 제 손을 잡아주신 것만으로도 대단히 감사드릴 일인걸요.”
그제야 나는 그 노인에게 한 수 배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 투르게네프 <거지> 중에서
투르게네프의 수작 중 하나로 젊은 지식인의 비극적 삶을 다룬 소설 《루딘》 역시 윤동주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윤동주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지식인의 고뇌와 괴로움의 출발점은 《루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루딘》은 당시 암울한 사회 상황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젊은 청년 루딘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에서 루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조국 러시아는 우리가 없어도 전진하겠지만, 우리 중 누구도 조국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별했다. 햄릿은 생각에만 몰두하는 분석적이고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자신을 맹신하는 동시에 의심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반면,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고 돌진한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투르게네프는 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보다는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되자고 했다. 세상을 끌어가는 것은 돈키호테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조리가 만연하고 불의한 시대일수록 돈키호테형 인간이 주목받기 마련이다. 윤동주가 살던 시대 역시 그런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행동을 중시하는 송몽규가 윤동주보다 먼저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은 거기서 오는 질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