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가장 흠모했던 시인

백석의 시집 《사슴》을 필사한 후 항상 끼고 살았던 윤동주

by 마테호른


윤동주는 자신보다 다섯 살 위인 시인 백석을 매우 흠모했다. 1936년 1월, 100부 한정으로 출간된 그의 시집 《사슴》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구할 수 없자 도서관에서 빌려 필사한 후 가슴에 항상 끼고 살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동생 일주에게 편지를 보내 “《사슴》을 꼭 읽어보라”라며 권하기도 했다.

당연히 작품에도 백석의 영향이 미쳤다. <별 헤는 밤>이 그 대표적인 예로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로 시작하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영향을 받았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중략) …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1941년 11월 5일 作, 〈별 헤는 밤〉 중에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별 헤는 밤>은 시인의 작품 중 가장 서정성이 짙다. 그러나 육필 원고를 보면 시가 1차로 완성된 후 별도로 뒷부분을 추가했음을 알 수 있다. 1941년 11월 5일에 썼다고 기록했는데, 추후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 이름자 묻친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4행을 덧붙인 것이다.


<별 헤는 밤>의 육필 원고. 곳곳에 수정한 흔적이 보인다.


<별 헤는 밤>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 어머니를 비롯한 그리운 이들과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와 발상과 표현 방법이 매우 유사하다. 이는 시인이 백석을 흠모해 그의 시집을 열독하고, 그와 같은 시를 쓰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하늘, 가을, 별, 고향처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어머니, 어린 시절의 벗들,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시인이 그리워하던 존재와 외국의 시인들을 등장시키며 마치 이야기하듯 서정의 밀도를 점점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별빛 가득한 밤 언덕 위에 ‘내 이름’을 썼다가 흙으로 덮어 버리면서 돌연 급변한다. 아픈 시대를 사는 시인의 자각이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후 마지막 연에는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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