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이 1년 2개월 동안 절필한 이유

<팔복>, 이후 크게 달라진 윤동주 문학정신

by 마테호른


윤동주 시인은 1939년 9월 이후 1940년 12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하루에도 몇 편씩 시를 쓰던 시인이 절필한 것이다. 과연, 그 이유는 뭘까.

그즈음의 상황을 통해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1939년 11월 10일, 일본은 ‘조선인의 씨명에 관한 건’ 이른바 ‘창씨개명’을 공포한다. 나라와 우리말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민족의 성과 이름마저 빼앗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본의 만행에 시인은 매우 분노하고 허탈해했을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그렇게 좋아하던 시를 쓸 의욕마저 빼앗아간 것이리라.


1년 2개월의 침묵을 끝낸 시인은 1940년 12월 말 <팔복>, <병원>, <위로>를 쓴다.


<팔복>은 《마태복음》 5장 3~12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팔복’과는 다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함으로써 끝 모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독립에 대한 강인한 열망을 꿈꾸고 있음을 뜻한다.


마태복음 5장 3 ─ 1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1940년 12월 作, <팔복>



팔복.jpg 1년 2개월의 침묵을 끝내고 쓴 <팔복>의 육필 원고


<팔복>이 독립에 대한 강인한 열망을 담았다면, <병원>은 암울한 시대를 사는 민족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또한, <병원>의 연장선에 있는 <위로>는 불행한 삶을 사는 민족을 위로하기 위해 <팔복> 원고 뒷면에 썼다.



<병원>의 육필 원고. 곳곳에 고친 흔적이 보인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뒷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엇든 자리에 누어본다.
─ 1940년 12월 作, <병원>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뒷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놓았다. 옥외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 1940년 12월 作, <위로>


이 시에서 ‘거미줄’은 일본은, ‘나비’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이렇듯 시인은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민족을 위로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 이제 우리가 그런 시인의 넋을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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