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윤동주를 있게 한 세 사람

by 마테호른


<서시>를 비롯한 19편의 시가 담긴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될 수 있었던 데는 벗 강처중과 후배 정병욱의 힘이 매우 컸다.

특히 정병욱은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남긴 자필 원고를 마루 밑에 파묻은 항아리 속에 넣어 보관하며, 귀중한 원고를 지켰다.

강처중 역시 벗의 요절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알리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1947년 초, 《경향신문》 주간으로 있던 정지용을 같은 신문 기자가 찾아왔다. 강처중이었다. 그는 죽은 벗의 육필 원고를 건네며, 그의 시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얼마 후 정지용은 꼼꼼한 검토 끝에 그중 하나를 1947년 2월 13일 자 신문에 싣는다.

유작 <쉽게 씌여진 시>였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 1942년 6월 3일 作, <쉽게 씌여진 시> 중에서



<쉽게 씌여진> 시가 실린 경향신문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정지용은 직접 소개 글까지 덧붙였다.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십여 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 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

그는 왜 무명 시인의 시를 자랑스럽다고 했을까. 그가 쓴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스물아홉이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적이 없이! 일제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알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윤동주를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이바지를 한 사람이 벗 강처중과 후배 정병욱이라면, 시인의 시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시인 정지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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