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소를 한 우리 가두면 안 되는 이유

by 마테호른




◆ 사자와 소를 한 우리에 가두는 것이 불공평한 이유


사자와 소를 한 우리에 가두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애당초 육식동물인 사자와 초식동물인 소가 한 우리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뤄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누구나 짐작하는 일이 일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영국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고 경쟁하라는 것은 사자에게 소를 잡아먹으라는 얘기와도 같다. 처음부터 둘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자와 소를 한 우리 안에 가둬서는 절대 안 된다. 아니, 불공평하다. 그런데도 만일 꼭 한 우리에 가둬야 한다면 ‘칸막이’라도 만들어줘야 한다. 둘 사이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고 경쟁하라는 것은 사자에게 소를 잡아먹으라는 얘기와도 같다. 처음부터 둘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이 필요하다


당신은 사자에 가까운가, 소에 가까운가?


살다 보면 누구나 사자가 되기도 하고, 소가 되기도 한다.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앞에서는 소처럼 온순해지며, 평소에는 유순하고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 앞에서는 사자처럼 거만하고 사납게 행세하기 때문이다.

조직 생활이건, 개인의 삶이건 소들만의 세상이거나, 사자들만의 세상이었다면 나름대로 공평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 어디를 가건 소와 사자가 섞여 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공평하지 못한 경쟁에 끼어들 수밖에 없다.

얼핏, 공정해 보이는 규칙을 보고 참여했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사자들만의 리그에 잘못 들어간 것 같은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자들의 경기에 소 떼가 응원하러 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으며, 사자들끼리의 경기에 들러리 역할을 해야 하는 때도 있다. 합격자와 기관을 이미 내정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공개 채용, 경쟁 입찰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럴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 더는 참지 말고, 칸막이 설치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라


혹시 당신 역시 애당초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들과 한 우리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소)은 물론 그들(사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소는 곧 죽을 운명 앞에서 어떤 의욕도 갖지 못할 것이며, 사자는 널려 있는 먹이 앞에서 야성의 본능을 잃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의욕 상실에 빠진 소건, 권태로운 사자건 간에 뻔한 싸움에서 생기를 잃고 있다면 더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살아나는 방법을 직접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칸막이 설치다. 만일 칸막이 설치가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해야 할 일라면 법과 제도, 관행, 시스템 변경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구조적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것 역시 개선 및 재구축하도록 요구하라.

그렇다면 승패가 뻔한 게임, 예컨대 지는 게임을 굳이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목표를 수정하는 것이 좋다. ‘한 수 배우겠다’라는 마음으로 게임에 임하는 것이다. 특히 한 분야의 일인자와의 게임은 절대 이길 수 없기에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실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더불어, ‘모두가 나보다 고수’라는 겸손함을 갖는다면 게임 자체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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