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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시인, 이육사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 편지

by 마테호른




캡처.JPG ▲ 1934년 서대문 형무소 수감 당시 찍은 사진(왼쪽)과 1941년 북경으로 떠나기 전 친우들과 사촌들에게 나누어준 사진. ⓒ 사진 출처 ㅡ 이육사 문학관


◆ 일제를 상대로 날선 언어를 뱉어내던 저항 시인, 이육사의 인간적인 면모


나는 지금 이 넓은 천지에 진실로 나 하나만 남아 있는 것처럼 외롭기 그지없다는 것을 형은 짐작하리다.

…(중략) …

혹 여름 피서라도 가서 복약(服藥·몸이 안 좋아 요양함)이라도 하려면 이곳으로 오려무나.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천년 전이나 같은 듯하다.


시인 이육사가 경주 옥룡암에 머물며 호형호제하던 시인 신석초에게 보낸 편지( 1942년 쓰인 이 편지에는 ‘(경북 경주) 옥룡암에서 신석초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의 일부로 “외롭다”라며 푸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격의 없는 사이에서만 나올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제를 상대로 날선 언어를 뱉어내던 우리가 아는 저항 시인의 강직한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에 조금은 낯설다.

이렇듯 문인들의 편지 속에는 그들이 차마 작품에는 쓰지 못한 내밀한 가족사와 개인사가 담겨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적인 면모와 민낯을 엿볼 수 있다.



캡처2.JPG ▲ 이육사가 신석초에게 보낸 엽서의 앞면과 뒷면. 받는 사람 이름이 신응식(신석초의 본명)으로 되어 있다. ⓒ 사진 출처 ㅡ 이육사 문학관



◆ 절친한 벗이자, 존경하는 시인이었던 ‘육사’를 평생 가슴에 간직한 신석초


이육사와 신석초는 절친한 벗이었다. 신석초에 의하면, 1935년 봄, 위당 정인보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 후 단짝처럼 어울려 다니며, 습작시를 돌려보고 감상을 나누곤 했다. 사실 나이로는 육사가 신석초보다 다섯 살 많았지만, 두 사람은 나이를 떠나서 절친한 벗이 되었다.


육사는 말술을 마시고도 끄떡없던 친구, 술을 마시던 캄캄한 밤에 슬며시 사라지던 친구, 서로의 고향집을 방문하고 가족의 경사를 챙기던 친구, 나의 시를 읽어주고 세상에 소개해주던 친구였다.

ㅡ 신석초의 회고


그러던 중 1934년 육사가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과 거듭된 수감 생활로 몸이 쇠약해진 탓에 경주 등에서 요양을 하기도 했다. 신석초에게 보낸 편지 역시 이때 쓴 것이다.



신석초에게 있어 ‘이육사’는 시인이기 이전에 절친한 벗이자, 존경하는 시인이었다. 이에 신석초는 일제의 갖은 고문을 이기다 못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평생 사랑하고, 가슴 깊이 간직했다.



▲ 뒷줄 왼쪽이 이육사,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신석초 시인. ⓒ 사진 출처 ㅡ 이육사 문학관


우리는 서울 장안에서 만나

꽃 사이에 술 마시며 놀았니라

지금 너만 어디메에 가

광야의 시를 읊느뇨.

내려다보는 동해 바다는

한 잔 물이어라

달 아래 피리 불어 여는 너

나라 위해 격한 말씀이 없네.

ㅡ 신석초, <육사(陸史)를 생각한다>




석초 형! 내가 모든 의례와 형식을 떠나 먼저 붓을 들어 투병의 일단(一端, 사물의 한 부분)을 호소함은 얼마나 나의 생활이 고단한가를 형이 짐작해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석초 형! 나는 지금 이 넓은 천지에 진실로 나 하나만 남아 있는 것처럼 외롭기 그지없다는 것을 형은 짐작하리다.

석초 형!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경주읍에서 불국사로 가는 도중의 십 리 허(許, 쯤)에 있는, 옛날 신라가 번성할 때 신인사(神印寺) 고지(古趾, 옛 문화를 보여 주는 건물이나 터)에 있는 조그만 암자이다. 마침 접동새(소쩍새)가 울고 가면 내 생활도 한층 화려해질 수 있다. 그래서 군이 먼저 편지라도 한 장 해주리라고 바라면서도 형의 게으름(?)에 가망이 없음을 알고, 내 먼저 주제넘게 호소하지 않는가?

석초 형! 혹 여름에 피서라도 가서 복약이라도 하려면 이곳으로 오려무나.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천 년 전이나 같은 듯하다. 그리고 답하여라. 나는 3개 월정도 더 이곳에 있을 것이다. 또 웬만하면 영영 이 산 밖을 나가지 않고 승(僧)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곧 부럽고 편한듯하오.

서울은 언제 갔던가? 아무튼 경주 구경 한 번 더 하여 보려무나. 몇 번이나 시를 쓰려고 애를 썼으나 아직 머리가 정리되지 않아 쓰지 못하였다. 시편(詩篇, 시를 모아 묶은 책)이 있거든 보내 주기 바라면서 일체의 문후(問候, 웃어른에게 안부(를 여쭘)는 궐(厥, 다함)하며, 이만 끝.

ㅡ 칠월 십 일, 이육사




사랑을 쓰다 그리다 그리워하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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