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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Oct 19. 2021

새는 한쪽 날개만으로는 날 수 없다

― 18. 편견에 대하여


“새는 한쪽 날개만으로는 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편견에 대해서 이보다 더 적확하게 지적한 말은 없을 것이다. 어떤 새도 두 날개를 이용해야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무조건 나만 옳다는 어리석음에 빠지곤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결점을 보완하려는 관용과 아량, 배려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관용과 아량, 배려가 없는 사회는 새가 한쪽 날개만으로 날 수 없듯,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공명조(共命鳥)’라는 새가 있다. 한쪽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한쪽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그런데 어느 날, 한쪽 머리가 건강을 위해 좋은 열매를 먹는 것을 질투한 다른 쪽 머리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는 일이 일어났고, 결국 둘 다 죽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만 있어서 서로 짝짓지 않으면 도저히 날 수 없는 ‘비익조(比翼鳥)’라는 새도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는 상생의 의미를 지닌 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 남녀차별, 가진 자와 없는 자에 대한 차별, 나아가 사회를 이분법으로 나눠서 보는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래전부터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 때문에 차별받고 괴로워한다. 심지어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편견과 선입견에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타당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비합리적인 맹신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자신과는 다른 이념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무조건 배척하는 일 역시 매우 흔해지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댓글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익명이라는 특성상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험한 말이 수시로 오간다. 인격을 비하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를 희롱하는 일 역시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무시해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귀하고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 역시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나 역시 존중받을 수 없다.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사람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어느 사회, 어느 개인이나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훨씬 성숙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같은 이분법의 공포를 소설가 이청준《소문의 벽》에서 다음과 같이 다룬 바 있다.


6·25전쟁이 한참이던 어느 날 밤, 낯선 남자가 전짓불을 들이대며 이렇게 물었다.

“좌냐, 우냐?”


이것만큼 두려운 상황이 또 있을까. 자칫 말을 잘못 말했다가는 목숨이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인종 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실례로, 미국 PGA에는 1934년부터 1961년까지 백인만 참여할 수 있었다. 또한, 1975년까지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흑인 선수는 절대 참가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서 누구도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과거의 실수로만 되돌릴 뿐,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사과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갈수록 사회가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고 있다. 비단,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 나라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생각건대, 이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경제적인 격차에서 오는 좌절감이 극심한 박탈감을 낳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것만큼 사람을 좌절하게 하는 일은 없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무너진다. 그리고 이는 편견과 차별, 일탈 행위 등으로 나타나고, 어떤 꿈도 꿀 수 없게 한다.  




▶▶▶ 서로가 서로에게 체온을 나누며 상처를 감싸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예컨대, 노조린(盧照隣)이라는 당나라 시인의 시에 나오는 ‘비목(比目)’이라 불리는 외눈박이 물고기는,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보이기 위해 평생 두 마리가 한 마리처럼 붙어 다녔다고 한다.  


한쪽 눈만으로는 세상을 절대 제대로 볼 수 없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야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하물며, 한쪽 눈으로만 본다면 꼭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실수하는 일 역시 매우 잦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차별과 편견, 선입견의 ‘빗장을 푸는 사람’이 되어라. 차별과 편견, 선입견은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또한,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

 

바라건대,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상대를 이해하고, 관용과 아량 넘치는 마음 넓은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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