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량(張良) | 止
《사기》를 보면 수많은 리더와 참모가 등장한다. 제왕만 90여 명에, 제후는 무려 200여 명이 넘는다. 참모의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사마천은 그 수많은 인물 중 가장 이상적인 제왕으로는 요·순과 한 문제를, 가장 이상적인 참모로는 장량을 꼽았다.
혹자는 한나라 개국 공신으로 ‘한초삼걸(漢初三傑, ‘한 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세 명의 최고 공신’을 일컫는 말)’로 꼽히는 한신이 ‘전쟁의 신’, 소하가 ‘위대한 재상’으로 그 역할이 뚜렷한데 반해, 장량의 역할은 사뭇 두드러지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에 불과하다.
장량은 군사(軍師)로서 중요한 작전이나 정책 결정에 참여해서 거침없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서초 패왕 항우를 마지막으로 몰아넣었던 ‘사면초가’ 전술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러니 장량에 대한 유방의 신뢰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장량은 참모 역할에만 머물 뿐, 더는 욕심 내지 않았다. 그만큼 처세에 밝았다. 오죽했으면 끊임없이 신하를 의심하고, 심지어 소하마저 여러 차례 의심했던 유방마저 장량만은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많은 역사학자가 “한 고조가 장량을 쓴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라며 장량을 치켜세우곤 한다.
장량의 처세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는 한의 개국 공신 서열을 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수십 년 간 한 고조 유방을 도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을 세운 참모는 수백 명이 넘었다. 고조는 개국 공신 서열 1위에 소하를, 2위에는 조참(曹參)을 지명했다. 막강한 무공으로 항우와의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한신은 21위였다. 그렇다면 한낱 변방의 건달에 지나지 않았던 유방을 황제로 만든 일등 조력자였던 장량의 공신 서열은 과연 몇 위였을까.
장량의 개국 공신 서열은 62위였다. ‘홍문의 연’에서 유방의 목숨까지 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초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보다 활약이 뛰어나지 않았던 장수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서열을 장량이 자처했다는 것이다. 가히, 그의 처세술이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장량의 처세술의 특징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적이 많을수록 목숨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마찰을 일으킨 적이 없는데, 이를 ‘방원(方圓, 모난 것과 둥근 것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모든 인간관계나 처세의 기본은 바로 방원이다. 즉, 모나지만 절대 모나지 않게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모가 있는 사각 모양의 테를 수십 개를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덧 그것의 전체 모양이 둥글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을 사는 이치이다.
― 《사기》 〈유휴세가(留侯世家)〉 중에서
하지만 모난 것을 둥글게 보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누가 봐도 그것이 날카로워 보이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
장량은 언제나 ‘위’가 아닌 ‘앞’을 보면서 살았다. 그의 사당 한쪽 바위에 새겨진 ‘성공불거(成功不居, 성공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와 ‘지지(知止, 자기 본분을 알고 그칠 줄을 안다)’라는 글자가 그것을 방증한다. ‘멈춤’과 ‘그침’의 미덕을 항상 마음 속에 되새기며 산 것이다.
장량은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임을 알았다. 이에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물러났다. 그리고 장가계(張家界, 원래 이름은 대용(大庸)이었지만, 1944년 ‘장량이 터를 잡은 곳’이라는 뜻의 장가계로 바뀌었다) 깊은 산속에 은거했다.
의심 많고, 변덕스러운 유방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유방은 가장 믿었던 재상 소하를 여러 차례 음해했고, 제자리를 넘보던 한신은 반란죄를 물어 비참하게 죽였다. 하지만 장량만은 목숨과 명예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멈춤과 그침의 미덕을 아는 사람일수록 위가 아닌 앞을 보면서 산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절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량의 삶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수많은 중국인이 장량을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참모로 꼽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