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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Oct 27. 2022

사람 마음을 꿰뚫은 ‘말더듬이 유세객’

― 한비자(韓非子) | 法


법가 사상의 완성자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해 법가 및 유가, 묵가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했던 한비자는 특히 법가에 주목했다. ⓒ 이미지 출처 - EBS 다큐 프라임 <제자백가> 화면 캡처


수많은 영웅이 하루가 멀다고 약육강식의 쟁탈전을 벌이던 춘추전국시대 각국 군주는 생존은 물론 천하 제패를 위해 뛰어난 능력과 역량을 지닌 인재를 갈구했다이때 등장한 것이 제자백가(諸子百家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의 총칭)’하지만 그 대부분은 현실을 뛰어넘는 지나친 이상주의를 표방하거나 농본주의복고주의를 지향했다법가만이 유일하게 새로운 사회의 대응 방식을 주장했다. 


법가는 공자의 유가(儒家), 노자의 도가(道家그리고 묵자의 묵가(墨家)와 함께 제자백가를 대표하는 네 개의 유파 중 하나로 법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혼란으로 인한 백성의 고통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엄격한 법 집행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대표적인 인물이 진나라 재상 상앙과 이사관중(管仲제나라의 재상), 신불해(申不害한나라의 재상)그들은 백성을 잘 다스려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봉건제가 아닌 군현제를 선호한 것이다.

 

당연히 천하 제패를 노리는 이들 중에는 법가를 선호하는 이가 많았다. 진시황과 조조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그들은 엄격한 법치(法治)와 술치(術治), 세치(勢治)를 통해 부국강병과 군주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여기서 ()은 군주가 정하는 규범을()은 법을 행하는 수단을()는 군주가 신하를 관리하고 주도권을 잡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이가 바로 한비자(韓非子)’본명이 한비(韓非)인 그는 전국시대 말기 한()나라에서 한 왕 안()의 서자로 태어났지만신분이 낮은 어머니 때문에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해 법가뿐만 아니라 도가유가묵가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했는데그중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법가였다.


한비자는 하루가 멀다고 전쟁이 일어나는 시대에는 기존의 사고와 체제로는 나라를 절대 부강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에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을 한나라 황제에게 건의했지만말을 심하게 더듬는 그의 의견은 번번이 무시되었다그러자 울분 터트리며 10만 자에 달하는 책을 썼는데그것이 바로 한비자.

 



진시황을 사로잡은 탁월한 논리력과 문장력

진시황은 한비자의 뛰어난 지략에 감탄했지만, 역린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결국 그를 죽이고 말았다. ⓒ 이미지 출처 - EBS 다큐 프라임 <제자백가> 화면 캡처


말했다시피한비자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그러다 보니 그와 대화하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말 한마디로 출세가 결정되던 시대이는 엄청난 콤플렉스였다하지만 서툰 말솜씨와는 달리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재주를 갖고 있었다바로 탁월한 논리력과 문장력이었다그것을 알아본 사람이 바로 진시황이었다.


우연히 한비자가 쓴 고분과 오두를 읽은 진시황은 그의 뛰어난 지략에 감탄했지만이사의 계략에 휘말려 곧 그를 죽이고 말았다한비자가 그의 역린(逆鱗)을 건드렸기 때문이다아이러니한 것은 평소 한비자는 최고의 화술은 수려한 말재주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讀心)에 있다며설득의 핵심은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즉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는 데 있음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무릇, 용이란 동물은 잘만 길들이면 등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턱밑에 한 자쯤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는데, 이걸 건드리면 누구나 죽임을 당한다. 유세하는 이가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목숨을 잃지 않고 유세도 절반쯤은 먹힌 셈이다.

― 《한비자》 〈세난(說難)〉 편 중에서


진시황에게 있어 법가 사상은 통치 수단일 뿐이었다그 때문에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하지만 한비자는 진시황에게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낱낱이 지적했다한마디로 진시황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셈이다진시황은 그런 그에게 더는 마음을 주지 않았고결국 이사의 뜻대로 그를 죽이고 말았다.

 



시대를 앞서간 진보주의자

한비자는 당대 어떤 사상가보다 진보적이었다. 그만큼 시대를 앞서갔고,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았다. ⓒ 이미지 출처 - EBS 다큐 프라임 <제자백가> 화면 캡처



제왕들은 남이 볼 때는 《논어》를 읽고, 혼자 있을 때는 《한비자》를 읽었다.


중국 역사학자 리중톈의 말이다그만큼 한비자의 사상은 중국 역대 군주들이 통치 지침으로 삼을 만큼 많은 공감을 얻었다유비 역시 죽음을 앞두고 아들 유선에게 반드시 읽으라고 당부했을 정도였다하지만 군주 위주의 사고방식과 도덕과 양심보다는 법치에 치우친 사상인간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품고 있기에 다소 과격하다는 평가 역시 존재한다.


만인지상 군주의 권위를 중시하고개인보다는 나라의 생존과 부국강병이 목표였던 시대에는 그런 사상이 적합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그러다 보니 그의 사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한비자 역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이에 역사는 항상 진화하므로 늘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 한다라며, “옛것에만 집착하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비자는 당대 어떤 사상가보다 진보적이었다그만큼 시대를 앞서갔고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의 말은 여전히 많은 이를 사로잡고 있다그만큼 세상이 공정하지 않고인간 역시 선하지 않다는 방증은 아닐까.


중대한 범죄는 대부분 존귀한 대신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하지만 법은 비천한 사람들만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법치를 바로 세우려면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부터 법 아래에 내려놓아야 한다. 인정에 휘둘려 적절한 상과 벌을 행하지 않으면 나라와 조직의 기강이 무너진다.

― 《한비자》 〈고분〉 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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