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신(韓信) | 益
그릇을 뜻하는 ‘명(皿)’과 그 위로 물이 넘치는 모습을 세 개의 점으로 표현한 ‘수(水)’가 결합한 ‘익(益)’은 본래 항아리나 그릇 안에 물이 가득 차는 모습을 본떠 만들어서 ‘넘치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뜻이 변해 ‘넉넉하다’, ‘유익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예컨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로운 친구를 ‘익우(益友)’라고 한다.
일반천금(一飯千金), 과하지욕(跨下之辱), 국사무쌍(國士無雙), 배수지진(背水之陣), 사면초가(四面楚歌), 다다익선(多多益善), 토사구팽(兎死狗烹)….
모두 한 인물과 관련된 고사성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 고조 유방을 도와 초패왕 항우를 누르고 한나라를 세운 회음후(淮陰侯, 고향이 회음현인 데서 붙여진 작위) 한신이다.
한신은 최고의 장수를 논할 때마다 첫손에 꼽히는 불세출의 명장이자, 백전백승의 천재 전략가다. 하지만 그는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 문제였다. 즉, 자기 그릇의 크기를 착각한 것이다.
고조가 한신과 장수의 그릇에 관해 얘기하며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군사를 얼마나 거느릴 수 있겠소?”
“폐하께서는 10만도 거느리지 못 하옵니다.”
“그렇다면 경은 어떤가?”
“신은 신축자재(伸縮自在)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말에 고조가 웃으며 반문했다.
“그런데 경은 어째서 10만 명의 장수 그릇에 불과한 나의 포로가 되었는가?”
“폐하는 군사를 거느리는 데는 능하지 못하지만, 장수를 거느리는 데는 훌륭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에게 묶인 까닭입니다.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주신 것이지, 사람의 힘은 아닙니다.”
― 《사기》 〈회음후열전〉 중에서
한신의 젊은 시절은 ‘과하지욕’과 ‘일반천금’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그는 포악한 동네 무뢰배에게 자주 무시당하곤 했다. 무뢰배는 그에게 “네가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찌르고 이 길을 지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지나가라”라며 매번 놀리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굽혀서 그의 가랑이 사이를 기었고, 이를 본 사람들은 한신을 겁쟁이라며 놀렸다. 이에 대해 훗날 초 왕에 오른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때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면 죄인이 되어 쫓겼을 것이다.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짓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을 참았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한신이 그때 품었던 마음과 인내심의 반만 지니고 있었다면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신은 군사적인 면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인간관계, 특히 처세술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했다. 실례로, 항우가 무섭(武涉)을 통해 유방으로부터 독립해서 항우의 초나라, 유방의 한나라, 그리고 한신의 제나라 등 세 나라로 천하를 삼분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이유란 것이 항우가 이전에 자신을 무시하고 몰라줬다는 해묵은 원한 때문이었다.
내가 항우를 섬길 때는 벼슬이 낭장(郞將)에 불과해 겨우 창을 들고 문지기 노릇을 했소. 그래서 한나라로 귀순했는데 유방은 내게 장군의 허리띠를 내리고 수만의 병력을 맡겼으며 자기 옷을 벗어 내게 입혔고 자기 밥을 나눠주었으며, 내 계책을 받아주었소. 그래서 내가 지금에 이르렀소. 남이 나를 깊이 신뢰하는데 내가 먼저 배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 죽더라도 그 뜻을 바꿀 수 없소.
― 《사기》 〈회음후열전〉 중에서
이렇듯 한신은 매사에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했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교만함 역시 높아져 갔다. 우유부단하고, 어중간함 역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하건 망설이고 미루기 일쑤라서 그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던 이들조차 곧 떠나곤 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한신을 일컬어 “군사적인 능력은 군계일학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백치와도 같다”라고 말하곤 한다.
한신은 채우기만 할 뿐 넘치는 것을 자제할 줄을 몰랐다. 그러니 그가 장량처럼 ‘항룡유회(亢龍有悔)’의 깊은 의미를 알 리 없었고, 소하처럼 겸허할 리도 없었다.
그런 한신을 두고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만일 한신이 도리를 배우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여 자기를 공을 과시하지 않고, 자기의 재능을 과신하지 않았다면, 그가 세운 공은 아마도 주나라 천 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太公)에 세운 공훈에 비견되어 후세들로부터 혈식(血食)을 받아먹으며 받들어졌을 것이다.
― 《사기》 〈회음후열전〉 중에서
사람은 저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미 한계에 도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욱더 발전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이는 각자 그릇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그릇을 가진 사람은 조금 채우고 나면 아무리 더 담고 싶어도 더는 담을 수 없다. 하지만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은 담는 대로 모두 받아들여 차후에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자기 그릇도 살피지 않은 채 무작정 채우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자기 그릇을 넘어선 다다익선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자, 패가망신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한신의 삶이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