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래 제목은?

by 마테호른


▶▶▶ 1945년 2월 16일 새벽, 일본의 한 감옥에서 조선 젊은이가 돌연 사망했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아홉! 생을 마감하기에는 너무도 이른 나이였다.


그로부터 열흘 후, 그의 고향 집에 한 통의 전보가 전해졌다.
‘16일 OO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에 가족은 경악했다.

3월 6일, 그의 고향 집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의 가족과 벗들이 모여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하루 뒤인 3월 7일, 또 다른 비보가 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와 함께 붙잡힌 벗 역시 옥중에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 윤동주!

그는 단 한 순간도 온전한 내 나라에서 산 적이 없었다. 민족의 한이 서린 간도에서 태어나, 식민지의 최전선인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압제자의 땅에서 결국 쓰러졌다.


그는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독립투사도, 유명 시인도 아니었다.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문학을 통해 민족이 처한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문학청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민족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은 여느 투사 못지않았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서시〉의 구절처럼, 독립의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죽음의 늪에 빠진 민족을 구하고자 했다.


1943년 7월 14일, 귀향하려던 그는 일본 경찰에 돌연 체포된다. 체포 이유는 ‘치안유지법 위반’이었지만, 실상은 우리말로 시를 써서 조선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하게 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렇게 해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채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동주 시인이 목숨을 거둔 후쿠오카 형무소


▶▶▶ 대부분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윤동주의 작품 역시 행간에 깃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단순한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알면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가 된다.


그가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이던 1936년 6월 10일에 쓴 〈이런 날〉이라는 시가 있다.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는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 (중략) …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


‘이런 날’은 ‘일본의 국경일’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 채 이 시를 읽으면 하나의 서정시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만주에서는 일본의 국경일에 만주국 국기인 오색기와 함께 일장기를 함께 달았다.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기념물은 없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크게 웃고, 신나게 뛰어놀 뿐, 나라 잃은 설움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런 날>은 그 심정을 담은 작품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생전에 ‘시인’으로 불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집을 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시인’이라는 칭호를 처음 부여한 사람은 조부 윤하현이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손자가 일본에서 만 27년 2개월(햇수로는 29년)의 짧은 삶을 마감하자, 윤하현은 자신의 비석으로 마련한 흰 돌을 손자의 비석으로 사용하며, 거기에 ‘시인 윤동주 지묘’라고 썼다. 죽어서야 비로소 시인이 된 셈이다.


조부 윤하현이 자신의 묘비로 마련한 돌로 세운 손자 윤동주의 묘비. '시인'이라는 칭호가 보인다.


▶▶▶ 그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래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었다.
말과 글, 나라, 이름과 성까지 빼앗겼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즉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환자처럼 보였기에 때문이다. 이에 병원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듯, 자신의 시가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1940년 12월 作, <병원> 중에서


생각건대, 만일 그때 윤동주의 시집이 출간되었다면 많은 사람이 따뜻한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또한, 그의 인생 역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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