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와 자유, ‘나비’는 누구였을까?

— 경계의 해체, 존재의 자유를 꿈꾼 사유의 비상

by 마테호른

나비의 꿈: 경계를 허무는 사유(思惟)의 시작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는 동양 철학사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사유 실험 중 하나다. 이 일화는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등장한다.


“옛날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한가로이 즐겁게 날아다녔다.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고, 오직 나비가 되어 있음을 기뻐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보니 분명히 장자였다. 그런데 과연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던 것인가?”


이 간결하고도 시적인 문장은 꿈과 현실, 자아와 타자,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꿈’은 비현실이고 ‘깨어남’은 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장자는 바로 이 구분 자체를 의심한다. "꿈을 꾼 것이 나였는가, 아니면 나비가 꾼 꿈이 지금의 나인가?"


그는 자아의 동일성, 세계의 실재성,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삶의 확실성마저 허물어뜨린다. 이 질문은 단순한 몽상적 상상이 아니라, 존재론적·인식론적 근거를 해체하려는 깊은 철학적 사유의 결과다.




장자가 말한 ‘자유’는 무엇인가?

장자에게 ‘자유’는 단지 세속적 억압이나 정치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보다 근원적이며, 보다 철저하다. 그것은 자아의 경계, 언어의 한계, 분별과 가치 판단의 틀, 사회적 정체성이라는 ‘구속’ 자체를 벗어나는 존재의 자유이다.


장자는 이 세상이 무수한 이름과 경계, 판단과 구분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선과 악’, ‘옳고 그름’, ‘높고 낮음’,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 같은 이분법적 구조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정해진 틀’ 속에서 자신을 규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구분이 상대적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본다. 이것이 바로 〈제물론〉의 핵심이다. 즉, 모든 사물은 ‘같다(齊)’. 본질적으로 우열이 없고, 분별은 인위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도달하는 곳이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아무런 인위적인 분별이나 작위 없이 존재하는 그대로 흐르는 삶이다. 장자의 자유는 바로 이 흐름 속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억지로 판단하거나 저항하지 않으며,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존재함을 스스로 증명하려 하지 않고, 세상의 질서를 조정하려 하지 않는 삶. 이것이 장자의 자유다.



나비는 누구였을까?

그렇다면 장자가 꿈에서 본 나비는 단지 장자의 상상 속 허상이었을까? 아니면 장자 안에 잠재된 또 다른 존재였을까?


이 나비는 상징적으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첫째, 나비는 자아가 완전히 사라진 무아(無我)의 상태를 상징한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동안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철학자인지 아닌지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나비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정체성 없는 순수한 존재로 살아간다. 이는 장자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존재 방식, 즉 ‘자기라는 이름조차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


둘째, 나비는 궁극적인 자유의 형상화이다. 나비는 가볍고, 방향 없이 날며, 바람에 따라 흘러 다니고, 생과 사의 구분조차 초월한 존재처럼 묘사된다. 나비는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도 향하지 않으며, 인간 사회의 규범과 논리를 초월해 존재한다. 그것은 무목적적 존재의 자유, 곧 장자가 말하는 ‘대자유(大自由)’의 형상이다.


셋째, 나비는 결국 장자 자신이다. 다만 여기서 ‘장자’는 우리가 아는 철학자 장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나’라는 정체성도, 철학을 하는 나라는 자의식도 없는, 형이상학적 존재로서의 장자다. 다시 말해, 나비는 장자가 꿈꾸던 존재의 가장 깊은 바닥, 혹은 자아가 사라졌을 때 도달하는 ‘진짜 나’일 수 있다.




경계를 허무는 철학, 존재를 다시 묻다

장자의 꿈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존재론적 기반을 해체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세계는 진짜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 이 질문은 단지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직결된 물음이다.


장자는 말한다.


“삶과 죽음도, 아름다움과 추함도, 인간과 자연도, 모두 같은 흐름 속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 굳이 그것을 나누고, 이름 붙이고, 붙잡으려 하지 말라.”


장자의 철학은 ‘자유’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수많은 층위의 얽힘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것은 하나하나의 껍질을 벗겨내는 고통스러운 여정이지만, 결국 그 끝에 남는 것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나’이다.


아무런 역할도, 이름도, 판단도 없는 ‘나’.

장자는 그 순간을,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장자의 질문은 2,000년이 훨씬 넘은 옛이야기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철학적 울림을 준다.


오늘 우리는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수많은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 평가와 기준이 만들어낸 꿈속의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믿는 현실은 실제로 깨어 있는 상태인가, 아니면 누군가 설계한 알고리즘 속을 부유하는 꿈인가?


장자는 묻는다.


“어쩌면 지금의 나야말로 누군가의 꿈일 수 있지 않은가?”


그 질문은 현실을 깨뜨리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 삶을 보다 근원적인 시선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자유의 물음이다.




한 문장 요약

장자는 나비였고, 나비는 장자였으며, 진정한 자유는 그 둘을 구분하려는 마음조차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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