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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Sep 14. 2021

"젖돼지요!"

축산학도들의 평범한 실수

'모돈'을 아시나요? 

아마도 돼지열병을 접하면서 모돈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母豚 : 어미 모 + 돼지 돈, 어미돼지라는 뜻입니다. 축산업계에서는 흔히 쓰는 단어죠.


저의 이야기는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축산학에는 '돈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돼지의 품종부터 돼지를 어떻게 키우는지, 어떤 질병이 있는지 등등에 대해 배우는 학문이에요. 수업시간에 '모돈'에 대해 배우고 친구들과 오빠들은 재미있게 받아들였습니다. 


그중에 어떤 오빠는 등치가 굉장히 산만했어요. 키도 크고 몸도 컸습니다. 마동석, 김동현과 같은 크기라고 할까요. 듣기엔 100kg가 넘는다고들 했죠. 살처럼 출렁거리는 몸이 아니었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그렇다고 근육이 울룩불룩하진 않지만 단단한 몸이었습니다. 얼굴이 까맣고 크고 단단한 남자였죠. 그 오빠는 겨울에 충전재가 빵빵한 노란 패딩을 입고 다녔는데요, 그럴 때면 몸이 두배는 더 커 보였습니다. 좁은 복도에서 그 오빠가 저를 향해 갑자기 뒤돌아보면 식겁해서 뒤로 자빠지곤 했었습니다. 복도가 꽉 찰 만큼 커 보였거든요.


아무튼, 우리는 밥을 먹으며, 수업내용에 대해 서로 물어보고 퀴즈를 내고 있었습니다. 공부라기보단 재밌어서 재미로 하는 대화 같은 거였어요. 그리고 그 오빠가 문제를 냈습니다.


"어미돼지를 뭐라고 하게?"


저는 손을 번쩍 들고 오빠에게 소리쳤습니다.


"젖돼지요!!!"


나름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만, 제가 제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가 젖돼지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더랬죠. 그 오빠와 눈이 마주치고 1초가 1분같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러더니 오빠의 눈이 흰자가 보일만큼 커지는 게 아니겠어요. 


"나 젖돼지라고?"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빵 터졌습니다. 찔려하지 말라고. 네. 정답은 앞서 써놓았듯이 '모돈'이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변명을 해보자면 순간 엄마돼지가 새끼들한테 젖 주니까 젖돼지라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오빠는 얼굴이 빨개지며 젖돼지가 뭐냐고 저에게 뭘 배운 거냐고 했지만, 저는 제가 한 말과 오빠가 당황해 모습에 웃음밖에 안 나왔습니다. 덩치는 산만해서 순진하게 찔려하던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요. 전혀 의도한 게 아니지만 미안하다고 오빠를 다독여주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저희가 만날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먹는 안주거리가 되었답니다. 




모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모돈은 보통 도체중이 200kg가 넘어요. 300kg까지 가기도 합니다. 거의 송아지보다도 큽니다. 소라고 해도 될 만큼 생각보다 무지막지하게 커요. 그런데, 돼지의 등급판정은 규격돈에 맞춰 등급을 평가하는데요, 110kg가 넘으면 등급을 줄 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등외' 등급을 받습니다. 이런 돼지들은 보통의 마트에서 취급하지 않아요. 그 대신 대패삼겹살로 많이 생산됩니다. 대패삼겹살은 얇고, 얇아서 금방 익고, 호로록 먹기 좋은데 가격까지 저렴하지 않았나요? 모돈이 아닌 대패삼겹살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이 모돈으로 공급을 받아서 저렴한 것이었습니다. 대패 삼겹살의 비밀 끝!


*도체중: 가축의 도축(머리와 내장을 제거함) 후 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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