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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오백원 작가의 첫사랑 이야기

by 오이

몇 시간 같이 카페 일을 한 게 다인데, 자꾸만 그 남자가 생각났다.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못한 후회감 때문인지 진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만큼의 내 이상형이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겨울방학 기간이라 학교에서 찾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이름 석 자조차 몰랐다. 준태-라는 것은 알았지만 흔한 이름이었다. 페이스북에 검색을 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준태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발만 동동 구르며 하루 이틀 흐르기만 하는 시간이 애석했다. 자연스럽게 잊힐 법도 한데 문득문득 그의 아기곰같이 웃는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여중, 여고를 나와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참 당황스러웠다.


개강을 하면 우연히라도 마주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확률은 세 잎 클로버 밭에서 네 잎 클로버도 아니고 여덟 잎 클로버를 찾아내는 정도로 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공대, 나는 농대이거나와 공대와 농대는 걸어서 4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위치했다. 교내에는 순환버스 두 대가 10분마다 줄줄이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로 넓은 캠퍼스였다. 교내 식당만 5개였고 학교 내 여러 가지 프랜차이즈 식당이 위치해있으며 10분만 걸어 나가면 대학로에 먹자골목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학교 안과 밖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학교에서 그를 우연히, 어쩌면 작정하고도 찾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실 공대 식당에서 그를 찾아내어도 내가 그 식당에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할 것이다. 스토킹도 아니고 상상만 해도 그 어색한 상황에 몸서리가 쳐졌다.


아르바이트했던 곳에 연락해 그 남자의 신상을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다시는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결국 그가 다녔다는 고등학교에 다녔던 내 지인이 있나 sns를 샅샅이 뒤졌다. 내가 사는 곳과 지하철로 두정거장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지인이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정말 변태 같지만 어떻게든 연락처를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진심이었나 보다. 드디어 한 명을 발견했다. 겨우 찾아낸 게 중학교 때 나를 따돌림시켰던 여자아이였다.


“야, 너 그렇게 웃지 마.”


어디선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참을 귀에서 맴돌았다. 한때는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도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한 말이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왜 저렇게 웃어. 쟤랑 놀지마 쿡쿡. 기억의 저편에서 기분 나쁜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기억일 뿐인데, 과거일 뿐인데, 가슴이 깊숙이 아려왔다. 마음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그 자리에서 한참을 얼어붙어있었다. 유체이탈이라도 했었던 것인지 덩그러니 교실에 혼자 서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혼자 그렇게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아, 이것도 싫은데. 마지막 자존심보다 더 강력한 자존심이었다. 이건 아니지.


그 친구를 잠시 덮어두고 스크롤을 내리는데 아, 찾았다. 초등학교 때 짝꿍이었던 남자아이. 프로필 사진을 보니 동그란 안경에 가무잡잡한 피부, 오동통한 얼굴 그대로였다. 어쩌면 어렸을 적 모습을 확대시켜놓은 걸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튼튼하고 건실해 보이니 반가움이 들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한 번도 본 적 없었을뿐더러 연락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친구였다. 연락을 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사실 다짐할 틈도 없이 손가락이 먼저 실행으로 옮기고 있었다.


- 오랜만. 잘 지내? 혹시 ‘준태’라는 애 알아?


대뜸 페이스북 메시지로 본론부터 말했다. 내가 봐도 참 기가 막혔지만 필수불가결의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거 필요 없어. 준태 준태. 빨리빨리.


그리고 그는 답장이 없었다. 내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나서 답을 안 하는 것인지, 바빠서 못 보는 것인지, 아니면 쓰지 않는 계정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이 애가 타고 조마조마해졌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 남자는 그 정도 값어치를 하는가. 다시금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명했다.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왼쪽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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