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주말이라 유니온 스퀘어 광장에는 대규모의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 열렸다. 장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과 상인, 관광객들이 섞여 광장 안은 북적였다. 걷는 곳이 어디든 사과, 포도, 오렌지와 자몽, 딸기, 바나나까지 달콤한 과일 향이 코를 찔렀다. 꽃을 파는 농장에선 프리지아와 장미들이 가득했다. 눈에 띄는 파란색 장미도 있었다. 그는 빨간 꽃이 피어 있는 선인장 하나를 골랐다. 선인장에는 커다란 노란색 가시 일곱 개가 박혀 있었다. 과일 행상들의 머리 위로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벌들이 윙윙대며 날아다녔다. 꿀을 파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과를 사기 위해 과일 매대 앞에 섰다.


"이 벌들도 자연친화 마케팅일 거예요. 한 번 둘러봐요. 광장 밖에는 벌이 한 마리도 안 보이니까."


그는 내 쪽으로 달려드는 벌을 손으로 좇으며 말했다. 나는 잠시 사과를 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말처럼 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 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광장을 벗어나면 벌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사과 몇 개를 바구니에 넣었다.


"얼마죠?"


그는 내 사과 값을 대신 계산했다.


"사과 맛있어 보이네요."


"선인장 값은 내가 낼게요."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선인장 값을 상인에게 건넸다.


"전 유기농이란 말이 싫어요. 햄버거 먹으면서 죄책감 느끼고, 야채, 견과류, 오메가3 끼니마다 챙겨 먹는 사람들 보면 안됐단 생각이 들어요. 비구니처럼 살 거면 절에 들어가지 왜 도시에서 살까."


그는 길을 걸으며 뉴욕 사람들의 강박증에 대해 얘기했다. 저장 강박증과 유기농 강박증에 대해 얘기하면서, 끝없이 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재밌었다. 건강 염려증 환자들로 가득한 뉴욕에서 이런 남자를 만나는 게 100년도 더 된 아득한 일 같았다. 그가 피우는 담배가 몇 개비인지 세어보았다. 1시간 동안 여덟 개비. 맨해튼 곳곳이 금연 구역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많은 담배를 피워댔을 것이다.


"나무를 찍어요. 사람은 안 찍구요."


"사진 찍을 때도 담배 피워요?"


"뭐, 가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꽃은 찍어요. 숲도 찍지만……."


"역시 담배를 피우면서요?"


"담배 피우기엔 공기가 아주 신선하니까. 숲은……."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느릿느릿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 말들이 대개 너무 느려서, 어떤 말들은 난해한 시처럼 느껴졌다. 영어를 못해서 생긴 버릇 같지는 않았다. 말의 어순도 특이했다. 그는 한국말을 하고 있었지만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 같았다. 잘못 번역된 외국어 문장을 보는 것처럼 조사를 쓰는 방법도 괴상했다. 감기에 걸린 건 아닌지 묻고 싶을 만큼 비음도 심했다. 저런 상태로 말을 계속 하면 목이 아플 것 같았다.


"고양이는 찍어요. 개는 안 찍지만."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혹시 담배 피우는 사람 싫어해요?"


"아뇨."


"좋은 소식이네."


"키스만 안 하면 상관없어요. 재떨이 냄새 나는 입 안을 굳이 탐험하지 않아도 되니까."


"안 좋은 소식이네요."


그는 나를 바라봤다.


"금연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나도 그쪽이랑 키스할 생각 전혀 없어요."


"장담 같은 거 안 하는 게 좋지 않아요?"


그가 손을 가린 채 내 쪽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턱 밑으로 담배 연기가 폭포수처럼 흘러 나왔다. 담뱃재가 그의 검정색 캔버스 아래로 툭툭 떨어졌다.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의 신발끈은 누덕누덕했고, 누군가의 발자국 같은 것들이 찍혀 있었다.


"개는 좋아해요. 고양이는 싫어하지만."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래도 고양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좋아해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의 뒷말을 낚아채 따라하는 라이언의 말투가 어느새 배어 있었다. 눈치 채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깨닫는 순간에, 나는 언제나 폭소를 터뜨렸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왜 웃는지 물어봐도 돼요?"


그가 빤히 나를 바라봤다. 웃는 여자와 표정 없는 남자. 분명 괴상한 엇박자였다.


"무는 것과 할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아플까요?"


"글쎄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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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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