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니온 스퀘어 근처의 북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했다. 의미가 있다면 의미 있고, 의미가 없다면 조금도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쉬지 않고 얘기했다. 저녁이 되자, 카페 밖으로 나와 길게 줄을 선 푸드 카트에서 5달러씩을 주고, 양고기와 치킨 할랄을 샀다. 그리고 'forever21'의 대형 간판이 가장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할랄을 먹었다.
"할랄, 정말 오랜만에 먹어요. 학교 다닐 땐 가끔 사먹었는데."
"양고기 먹어볼래요? 맛있는데."
그는 자신이 먹던 양고기 할랄의 반을 내게 나누어주며 말했다.
"할랄은 저한테는 다섯 시간짜리 음식이에요."
“다섯 시간?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음식을 먹은 후, 배고프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최대 시간. 한식은 세 시간짜리예요."
"햄버거는?"
"두 시간."
"음식을 칼로리가 아니라 소화되는 시간으로 계산하는 사람은 처음 봤는데요?"
"날씨는 셔츠, 점퍼, 카디건, 외투로 분류해서 계산해요."
"그건 또 뭐예요?"
"오늘은 긴팔에 스웨터 하나 걸치면 되는 날씨란 소리예요. 짧은 티와 긴 티에 옷을 하나씩 더하거나 빼는 거예요. 여기에서 날씨가 3도 더 떨어지면 목도리를 하면 돼요. 3도가 더 떨어지면 모자 추가!"
그는 자신의 회색 카디건을 가리켰다. 카디건 안의 타탄체크 셔츠의 단추는 목까지 전부 채워져 있었다. 단추를 목까지 전부 잠그고 다니는 남자를 본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는 뭔가 조금씩 이상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더 이상한 것이 나타나 조금 전에 느끼는 감정은 한참 멀리 밀려 나갔다.
"보내줄까요?"
"네?"
“날씨와 온도에 따른 옷차림 분류표."
"그런 게 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꽤 편해요. 아이폰으로 평균 온도와 시간별 온도를 확인하면, 뭘 입고 나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긴 화씨를 쓰니까, 섭씨를 화씨로 바꿔서 보낼게요."
"예술보다는 어쩐지 이공계 쪽이 더 어울려 보이네요."
"포항에서 공대 나왔어요, 저. 고향이 그곳이기도 하고."
"공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믿는 눈치네. 정말인데."
"음……."
"관뒀어요. 시시하진 않은데 재미가 없어서."
그는 말을 하는 동안, 표정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농담을 해도 웃지 않았고, 심각한 얘길 해도 조금도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심드렁한 얼굴로 그는 줄곧 자신이 선택한 중대한 결정이나 감정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심각해지거나, 반드시 우울해질 법한 그런 얘기였다.
"공대 특성상, 꽤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그 친구가 저랑 헤어지고 나서 바로 결혼했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사귀었던 친구라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 만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니까."
"괴로웠겠네요."
"헤어진 게 아니라 해고당한 기분이었어요. 퇴직금 대신 청첩장이 날아왔는데 봉투에 이렇게 써 있었거든요. 넌 나를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
"청첩장을 보냈다구요?"
"결혼하는 상대가 제 지도교수였거든요."
그의 얼굴엔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쭉 살다보면 육지가 정말 답답해요. 혹시 몬탁 가봤어요?"
"동쪽 끝 말인가요?"
"네."
"아직. 못 가봤어요."
"좋아요, 거기. 관광객들 없는 2월은 특히 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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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