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7.

그를 만나고 돌아온 후, 며칠 동안 몸이 아팠다.


회사에 병가를 내고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목이 마르면 냉장고에 있던 우유를 꺼내 마시고 침대로 돌아가 다시 잠들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온 후, 이상할 정도로 심장 한 끝이 조여 오듯 아팠다. 통증은 자는 동안 잠시 잊혀졌다가, 깨어나면 마치 잊고 있었다는 듯 더 강하게 그 부위를 찌르듯 압박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몸이 떨렸다. 이를 악물지 않으면 입술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나는 몇 번이나 땀에 젖은 속옷을 갈아입다가 결국 옷 입기를 포기했다. 두꺼운 이불을 꺼내와 뒤집어 쓴 채 맨 몸으로 침대 안에서 고꾸라지듯 잠들었다.


현관의 벨이 울렸다.


벨은 정확한 간격으로 쉬지 않고 울렸다. 벨소리만으로 누가 왜 문밖에 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포기를 모르는 노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벨이 스무 번쯤 울렸을 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현관문까지 걸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문 앞에는 집 주인 주세페가 서 있었다. 그는 잠시 놀란 얼굴로 나를 보더니, 이내 밀린 우편물이라며 전시도록과 편지들을 내밀었다. 그가 커다란 토마토 한 개를 손에 쥐어주었다.


"마리, 밖은 아주 많이 추워."


주세페는 뒷마당에서 키운 토마토와 가지를 따서 내게 저녁 반찬으로 가져다주었다. 그 오래된 취미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10년 넘게 계속된 것이었다. 토마토를 많이 먹어야 건강하다는 지론을 가진 아흔 살 이탈리아 노인의 고집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그는 한사코 마다하는 내 손 위에 언제나 토마토와 가지를 대여섯 개씩 올려놓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혼자서는 절대 다 먹을 수 없는 양이었지만, 이탈리아 남자답게 내게 분명히 숨겨놓은 애인이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감기 조심해라, 마리."


주세페가 사라지자 비로소 뒤에 선 낯선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프리지아 꽃다발로 가린 채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릴리에게 집 주소를 물어봤어요."


프리지아를 내리자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약은 먹었어요?"


성주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그는 내 어깨에 자신의 재킷을 숄처럼 둘렀다.


"오늘은 재킷을 입고 그 위에 목도리도 해야 하는 날씨예요."


그는 자신의 목도리를 재빨리 풀어 내 목에 감았다.


"그날, 얼굴이 정말 창백해 보였어요. 아플 것 같은 얼굴이었어."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모자까지 써야 하는 날씨라구요!"


그는 자신의 검정색 비니를 벗었다. 그가 비니를 내 머리에 씌워주는 동안, 나는 멍하게 현관문 밖에 서 있었다. 체온이 묻어 있는 것들은 언제나 따듯했다. 차갑던 귀가 따듯해졌다. 대신 그의 코가 점점 발개지고 있었다. 현관 밖은 추웠다. 엄마가 그걸 오래된 건물에 생기는 웃풍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감기에 걸리기 좋은 날씨였다.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아서 걱정했어요."


그의 말 속에는 나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서 걱정했다'는 말 뒤엔 '왜 전화하지 않았느냐!'는 뒤틀린 분노도 함께 담겨 있었다. 지금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그의 표정이 그때는 어항 속처럼 들여다보였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의 넋 나간 얼굴이었다. 몽롱한 얼굴로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나가줘요."


그는 처음부터 내 말 따윈 듣지 않았다.


"제발!"


그는 허락 없이 내 집에 들어왔다. 그는 질문 없이 화병을 찾았다. 그는 기척 없이 물을 따를 컵을 찾았고, 냄비를 찾아 가스레인지에 뜨거운 물을 끓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혐오하는 유기농 음식점에서 사온 야채수프를 담을 작은 볼과 은색 수저를 찾아냈다.


"목마르지 않아요? 땀을 많이 흘렸을 거예요. 물 안 마시면 반드시 탈수 증상이 생겨요."


나는 뒤늦게 약효가 퍼지기 시작한 수면제 때문에 졸린 눈을 부릅뜬 채, 그가 집 안의 서랍들을 모두 다 열어보는 걸 지켜봤다. 그가 서랍을 여는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달그락거리며 그가 서랍 안에 정리된 내 물건들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일주일 전이라면, 낯선 남자가 내 집에 들어와 정리된 내 물건에 손을 대거나, 화병이 아닌 물병 안에 꽃을 꽂도록 내버려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한 말은 "이제 나가줘!"가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길고 나른한 하품이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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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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