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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29. 2016

킬러에게도 사정이란 게 있더라구요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사람 때리는 킬러도 처음부터 나빴을까요? 아니, 애초에 나쁜 사람이 세상에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요.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으셨던 독자라면 누구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신간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이 나왔습니다. 이번 책, 그런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전작이 알란 할아버지가 벌이는 소소한(?) 모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스케일이 더 커졌습니다. 주인공들의 면면이 아주 화려하거든요.


우선, 킬러 안데르스. '킬러'는 터프하거나 무식하다는 귀여운 이유로 덧붙여진 별명이 아니랍니다. 그는 감옥 경력만 30년이 넘는 진짜 베테랑이지요. 페르 페르손, 이상한 이름을 가진 킬러의 동업자(?)는 원래 변두리에 처박힌 '핑크 클럽'이라는 색싯집의 직원이었죠. 지금은 업종 전환한 '땅끝 하숙텔'의 리셉셔니스트로서 조금 덜(?) 불법적으로 살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나가 있습니다. 샌드위치 하나 사먹을 돈도 없어서 행인을 붙잡고 기도해준 후, 대가로 삥(?)을 뜯어 먹고사는 여인이랍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고통받은 과거는 덤이고요.


페르 페르손에게 있어서, 삶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어떤 초월적 존재도 믿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벌써 오래전에 죽었기 때문에, 좌절감을 쏟아부을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여 그는 지구 전체를 혐오하기로 접수 데스크 뒤에서 아주 일찍부터 결심했다. 지구의 70억 주민을 포함하여, 지구에 실려 있거나 연관된 모든 것들을 말이다.(84쪽)


킬러 안데르스와 페르 페르손, 그리고 요한나는 모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인생들'입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수라 소굴 같은 세계, 구르고 구르다가 용틀임(?)이라도 한 번 해야 겨우 또 비벼볼 만해지고 먹고살 만해지는 이 세계에서 신산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사실상 다른 소설에서는 '밑바닥 인생'들이라 총칭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대책이 없어요.


하지만 요나스 요나손이 누구인가요. 그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이미 그 특유의 낙천적인 인생관으로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전적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소설에서 요나스 요나손의 '스케일'은 더욱 커졌답니다. 이야기의 스케일을 말한 것은 아니에요. 말하자면, 그가 재치와 유머로 돌파하는 감정의 스케일, 낙관주의의 스케일이 커졌다는 말씀입니다.

 
초반부부터 그는 막장까지 치달은 사람들을 그립니다. '땅끝 하숙텔'에서 만난 세 사람은 이미 '땅끝'에 선 상태이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질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 앞에 닥쳐온 위협들과 사건들을 임기응변으로 하나하나 격파해 가는데, 그 스케일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들 삶의 이러한 '독특한 비즈니스 전략'은 '저래도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르게 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요나스 요나손



이것은 그의 무의식이 불안스레 속삭여대기 시작한 것과는 달리, 그가 다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필연적이지만은 않다는 얘기가 아닐까? 만일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도 사는 게 가능하다면? 아니, 심지어 주크박스 같은 것들을 집어 던지지 않고도 사는 게 가능하다면?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길을 찾을 수 있으며, 또 그 길은 어떤 길일까?"(90쪽)


하지만 저를 믿으세요. 비록 과격하다 할지라도, 이들의 과격한 삶의 방식이 윤리에 너무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박한 의문이 떠오르는 순간에도, 능숙한 이야기꾼 요나손은 단 한 순간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놓치는 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차가운 냉소와 따끈한 웃음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는 그의 글솜씨는 페르와 요한나와 안데르스가 벌였던 신출귀몰한 ‘비즈니스 전략’에 뒤지지 않는답니다.


결국 그들은 삶이 잠시나마 즐겁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한 손으로는 아무도 모르게 몇 배나 받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주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피차 인정했다. 다시 말해서,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물론 행복하지만, 주는 것에도 좋은 점들이 없지는 않다는 얘기였다.(373쪽)


춥나 싶으면 살짝 따뜻하고, 덥다 싶으면 슬쩍 ‘쿨’해지는 요나스 요나손의 새로운 소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실컷 낄낄거리며 이 삼인방의 여정을 따라오셨던 분들께서 갑자기 마음이 찡하다고 그때 가서 고백하시더라도, 저는 그다지 놀라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또 누군가가 이들의 매력에 빠졌구나! 하고 함께 웃겠지요.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킬러에게도 사정이란 게 있더라구요 -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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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열린책들 장수영 에디터
2016년 1월 열린책들에 입사했다. 책 좋아하고 글 좋아하는 사람을 반기는 첫 번째 회사였다. 지금은 운명이거니 생각한다. 빵보다 밥, 연극보다 영화, 영화보다는 책을 더 좋아한다. 열린책들 디지털콘텐츠팀에서 전자책을 만들어 팔고 있다. 

swimin@openboo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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