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가 이혼의 충격으로 회사에 있는 모든 남자들과 자고 다닌다는 얘길 꺼낸 건 릴리였다.
상관없었다.
그래봤자 직원은 열다섯 명뿐이고 백 퍼센트 거짓말도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
나는 신시아와도 잤다.
10.
내가 행복을 다행이라 바꿔 부르는 사람이란 건 나도 안다.
'행복하다'는 내게 '불행하지 않다'는 말과 같았다.
두 문장의 차이에 대해 내게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인생의 목표가 행복인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결코 지속가능성 감정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가졌던 의문은 그런 것이었다. 어째서 어떤 사람에겐 '살다' '즐기다'로 수렴되는 삶이 어떤 사람에겐 '견디다'가 되어야 하는 걸까.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삶은 어째서 모든 인간에게 그토록 철저하게 공평하지 않은 걸까. '행복하다'는 말은 어쩌면 '운이 좋았다'라는 말로 바꿔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운이 좋았다'라는 말 앞에는 '지금까지는!'이란 말이 꼭 붙어야 하겠지만. 바로 전까지 '나는 행복하다'라고 외치던 사람이 달려오는 차에 돌연 한쪽 다리를 잃는다면, 그는 여전히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년기의 나는 분명 감정에 솔직한 편에 속했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내가 처음 강아지를 키우고 그것의 삶과 죽음까지 보았던 날의 기억들을, 쥐약을 먹고 눈을 뜬 채 죽은 강아지 옆에서 3일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었던 기억 같은 것 말이다.
엄마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웃고, 너무 자주 우는 나를 늘 걱정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감정을 드러내면 연민을 끌어내기보단 훗날 어떤 식으로든 이용당한다는 걸 알게 됐다. 악의 없이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사람은 사람의 연민을 이용한다. 사람은 사람의 시간을 착취한다.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손쉽게 사용한다. 엄마나 아빠가 그것을 '말이 아니라, 상황이 거짓말을 하게 한다'라거나 '어른 된다', '철든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일곱 살 때, 처음 집 앞에서 낯선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울고 있었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즈음, 엄마는 잠든 나를 끌어안고 자주 울었다. 절대로 알고 싶지 않은 가족의 비밀은,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공포와 두려움의 크기 때문에 결국 물 아래 시체가 부유하듯 스스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보기 흉한 끔찍한 형태로 말이다.
아빠의 여자가 먼저였고, 엄마의 남자가 나중이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권태이든, 복수이든, 내겐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외도의 순서가 아니라, 두 사람에겐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각자의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이 헤어지려 한다는 걸 알았다. 방문을 조금만 열어놓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들이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 유일한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나를 사랑했다는 것도.
어떤 날은 매몰찬 말과 매로 사랑했고, 어떤 날은 커다란 선물과 포옹으로 사랑했지만, 그것이 때때로 일관성 없고, 불균질하고, 불완전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로 일관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은 교육학 서적에나 나오는 말들이었다. 나는 스스로 변해야 했다. 그것이 내겐 ‘철이 든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였다.
말하자면,
나는 심리적 조로증에 걸린 여덟 살 어른이나 마찬가지였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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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