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10.

성주는 사진을 찍었다.


포르노그래피였다.


사진 속의 여자들은 대부분 미국의 3개월 무비자 여권을 들고 와서 자발적으로 불법체류자가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와 동거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가 '조용한 백설공주'라는 이름의 한인 불법 매춘 사이트의 모든 사진을 전담하는 책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춘업은 주로 한국인들 밀집 지역인 플러싱과 퀸즈에서 가정집으로 위장해 영업되었다. 더러 맨해튼 코리안 타운의 건물을 임대해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그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SVA'처럼 비싼 예술학교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한국에 돌아가려던 그를 붙잡은 것도 이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당 천 달러가 넘는 일이었고, 맨해튼만 벗어나면 2백 달러의 팁을 따로 받는 일이었다.


그는 늘 전화로 일했다.


전화기는 언제나 켜져 있었다.


전화를 받고 일정이 잡히면 그는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34번가 우리은행 앞에서 매춘 사진이 필요한 사람과 접선했다. 건너편 파리 바게트에서 '오곡 화과자'라고 적힌 옛날식 디저트를 먹는 뉴요커들이 즐비한 코리안 타운 한복판에서, 그는 낯선 사람이 건네는 돈 봉투를 받아 들었다. 가끔 그곳에서 출발하는 검정색 밴을 타고 여자들과 함께 교외의 스튜디오나 베어 마운틴, 세븐 레이크 같은 야외로 이동하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브라 없이 호피 무늬 팬티를 입은 여자를 호수 옆 커다란 느릅나무 아래 세워놓거나, 늘어지는 채찍을 보아 뱀처럼 걸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팬티 없는 엉덩이를 찍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장소는 첩보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번 바뀌었다.


전화 속 목소리는 여자였다.


그는 그 여자를 이름 없이 '누나'라고 불렀다.


누나는 현금만 사용했다. 그녀는 코카인을 파우더나 수제비라고 부르는 여자였고, 술과 마약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손님의 신용카드를 무단으로 긁어 수천 달러를 청구하는 악덕업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회사를 택시, 화장품, 가발회사로 위장해 현금을 세탁했던 그 여자는 청량리 588 출신으로 서른넷에 은퇴해 뉴욕에서 포주가 됐다고 했다. 팁에 후한 여자라는 건 일을 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두둑해지는 그의 지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커다란 서랍 안 낡은 나이키 신발 박스 안에는 신발 대신 50달러, 100달러짜리 현금이 노란 고무줄에 돌돌 말린 채 가득 쌓여 있었다. 설혹 내가 한 뭉치 집어간다 해도, 그는 사라진 돈이 어떻게 됐는지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그 돈으로 카메라와 렌즈를 교체했다. 시카고나 산타페에서 열리는 포토 리뷰에 갈 경비와 심사비를 마련했고, 그룹 사진전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액자과 액세서리들을 구입했다. 장비는 점점 더 많아졌다. 이름을 기억하기조차 힘든 대형 프린터가 들어왔고, 작업과 동시에 사진을 바로 뽑아 확인할 수 있다는 또 다른 프린터가 들어왔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렌즈와 카메라가 집 안을 잠식했다.


그의 풍족함은 예술적 자의식의 일부를 훼손한 뒤 얻은 대가였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후에야, 나는 그가 자신의 책상에 앉아 밤새 하는 일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어째서 'NY PD. 한인 매춘 조직, 대대적인 적발!' 같은 기사에 그가 그토록 시니컬해졌는지 말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예술가라는 본래의 직업 이외에 웨이트리스나 택배기사, 청소업 같은 직업 하나를 더 가지는 것이 이 도시에선 너무나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예술대학교 학생과 웨이트리스라는 직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직업에 대해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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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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