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성주에겐 사실 훨씬 더 복잡한 신원 상의 문제가 있었다. 병무청의 현역입영 대상자였던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여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종종 한국 대사관에 가서 불안정한 자신의 여권을 갱신하고 신분을 보증 받아야 했다. 영주권 심사 탈락은 곧 그의 군대 입영을 의미했다. 성주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릴리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해 성주를 구해줄 수도 있었다. 릴리 메이슨이 성주에게 보이는 관심은 그러므로 온전히 그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다.


"마리,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네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성주는 내 친구고 나는 그가 추방되길 바라지 않아."


"오해하지 않아."


물론 나는 그녀를 오해하지 않았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의 '오해하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오해의 여지가 많은 것인지를 아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성주에 대한 릴리의 관심은 매우 불온한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녀는 라이언 스틸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라이언 스틸을 맹렬히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겐 일관되게 그 사실을 전달하려 애썼다. 그것이 릴리의 연애 전략이었다. 한 사람과의 거리가 그 사람과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더 잘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런 건 상관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관심이 애정과 집착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알고 있는 지금에서야 나는 그녀가 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다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메신저를 공격하면 된다. 그건 언론들이 가장 자주 쓰는 가장 치졸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건 예술계 공통의 전통이기도 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라는 말은 공감할 수 있는 말이긴 해도 옳은 문장은 아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건, 나와 별개의 문제일 수 있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토록 자명한 사실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상처받는다.


결국 사람들 사이의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일들은 모세가 바다 위를 건너고, 30년 수련 끝에 공중부양에 성공한 스님의 이야기일 리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일, 이것보다 더한 인간의 기적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다만, 릴리는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뿐이다. 라이언은 그녀에게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성주의 전 와이프인 내 감정을 흔들기 위해 일관되게 성주의 불안정한 신분을 이용하고 있었다. 우정을 빙자한 걱정이 실은 자신의 불안감을 덜기 위한 것이란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내 정신과 주치의였다면 그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감정적 투사'라고 말했을 것이다.


릴리는 한 번도 내게 이혼의 직접적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참을성 있게 어떤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스스로 무너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처럼 뜻밖의 정보를 자신에게 흘릴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통스러울 만큼 넘겨짚고 상상하는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정확히 듣길 원하는 순간의 이야기를 내게서 직접 들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가령 라이언 스틸과 내가 어디에서, 언제, 몇 번을 잤는가와 같은 나로선 지극히 사소한 문제 같은 것들을. 릴리처럼 감정적인 사람이 그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는 모습을 보는 게 나로선 쉽지 않았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건 내게 전혀 다른 문제다.


"성주가 지금 렌트비도 못 내고 있다고 들었어."


그녀가 모르는 게 더 있었다.


"마리, 너도 알고 있어?"


사실 그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잘못되거나, 내 쪽에서 일부러 오해를 방관한 것들이었다.


적어도 성주에겐 이민법 전문 변호사를 살 만한 돈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고서라도 자신을 구원해줄 전문 브로커를 사들일 만한 충분한 돈을 의미했다. 그런 변호사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의 군대 문제를 해결해줄 만한 묘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령 미군에 입대해 합법적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던가, 또 다른 결혼을 계획해 영주권을 연장하는 방법이라던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시도할 것이다. 돈으로 못 할 일이 없다는 건 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스스로 입증한 가장 평범한 진실 아닌가.


성주는 릴리 메이슨의 월급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매달 벌어 들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2년 동안은.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부자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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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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